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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을 만들며

세포벽이 얇아지는 화학반응

by 정연섭


2011년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에 매년 곶감을 만들었다. 가을이 되면 유성시장에 나가 대봉을 한 박스씩 사 와 깎았다. 한꺼번에 많은 감을 깎을 수 없으므로 매주 시장에 나갔다. 저와 같은 수요층이 있는지 곶감을 한 트럭 쌓아놓고 파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가을이 오면 우리 집 처마 밑 빨래대에는 옷보다는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더 이상 감을 메달 공간이 없어지면 겨울 채비도 끝이 났다. 한 때에는 나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좋은 이유가 곶감을 말리기 좋기 때문이라며 우기고 다녔다. 아파트 베란도는 창문을 활짝 열어도 단독주택의 처마보다 통풍이 약하다.

곶감이 비을 맞으면 검은 곰팡이가 피므로 들이치는 비를 주의하면 곶감 말리기는 대체로 성공이다. 재작년에 가을비가 자주 내려 비를 피하느라 고생을 한 탓에 올해는 자제를 한 측면도 있지만, 올 가을은 집안에 일들이 많아 유성 시장에 나가지를 못했다. 연례행사를 건너뛰나 싶었는데 근처 농협에 대붕을 판다면서 아내가 2 박스를 냉큼 사 왔다. 우리를 기다릴 할아버지에게 잠시 미안했지만 대봉을 보니 반가웠다. 감자깎이 칼을 내어 오고, 곶감 걸이를 찾씻었다. 감자와 반비라는 두마리 멍멍이들은 신기한 먹거리가 생겼다며 나의 눈을 피해 땡감 껍질을 훔쳐간다.


땡감이 숙성되어 홍시가 되고, 다시 건조되어 쫀득한 곶감이 되는 현상은 너무나 익숙하여 과학적으로 살펴보고픈 생각을 여태 못했다. 음식을 만드는 활동이나 농사를 짓는 활동도 화학반응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안주하여 분자적 현상을 잘 살펴보지 않았다. 제가 '크로의 과학사냥'을 저술할 때에도 참 무심하게 세상을 보고 있다는 자책을 했다. 화학 실험실에만 화학 현상은 일어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저술 덕분에 효소와 효모도 구별하고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영양학적으로 곶감의 성분은 쉽게 이해된다. 탄닌이 있고, 비타민이 많으며 물이 약 80%를 차지하며 그 외 단맛은 포도당과 과당 덕분이다. 음식을 즐기는 측면에서 보면 이 정도도 대단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과학자는 찜찜함을 느낀다. 물론 곶감 현상은 너무나 잘 연구되어 제가 연구 문헌을 찾으면 저의 호기심을 충속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아직 이해되지 않는 곶감의 현상은 무엇인가? 물론 과학자마다 다를 것이다.


저의 호기심은 이것이다. 땡감이 딱딱한 형태가 허물어져 젤 형태가 되는데 땡감의 형태를 잡아 주는 기계적 구조체는 무엇인가? 세포벽인가 혹은 세포질 안에 있는 섬유질인가? 에틸렌이 숙성을 가속시킨다고 하는데 기계적 구조체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을까? 문학적으로 호랑이를 쫓아내는 곶감의 위력을 알지만 과학적으로 숨어 있는 곶감의 위력은 발견하고 싶다.


오늘 매단 곶감은 내년 설날에 가족 친지들에게 풀어놓을이다. 사실 곶감을 만드는 사람은 우리 부부이지만 곶감을 먹는 사람은 친척이다. 이번 설날에는 곶감의 과학 작용을 자녀들에게 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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