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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형과 피자 토핑

과학자의 나비 게이터

by 정연섭

고향이 거제이다. 명절이나 애경사가 있으면 대전-충무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간다. 200Km의 제법 먼 거리지만 서대산, 덕유산, 지리산을 지나간다고 생각한 후에는 멀다고 느끼지 않는다. 87년부터 이 길을 탔지만 최근에야 큰 산으로 표지석을 잡았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 국도를 탈 때에는 자동차보험에서 준 공짜 지도의 안내를 받았다. 옆좌석의 아내가 지도를 보는 Navigator였는데 간혹 잘못 안내하기라도 하면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였다. 지리를 가르칠 겸 초등학생이었던 딸에게도 지도를 맡겼다가 아직도 그 앙금이 남아있다. 요즘 GPS는 길을 알려주는 역할 못지않게 가족 간의 화합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큰 산으로 길을 찾기 이전에는 도시명으로 차 위치를 인식했다. 대전, 금산, 무주, 장수, 함양, 진주, 사천, 고성, 충무를 기억한 후에 교통표지판의 지시를 따랐다. 도시명으로 길을 찾는 방식은 대체로 잘 작동하지만 낯선 길에서 방향감각을 잃기 쉽다. 반면에 큰 산이나 큰 호수로 길을 찾는 방식은 미지의 길에서도 이동할 큰 방향을 알려준다. 엉터리 주장이라고 가족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마저 등을 돌릴지 조심스럽다. 암튼 GPS의 길 찾기 알고리듬에는 큰 산과 호수를 고려하여 최단거리를 구하는 알고리듬은 없다.


오늘 운전하면서 큰 산보다 진보된 길 찾기 방법을 생각했다. 산 대신 산맥을 기준으로 운전할 수 있다. 조금 더 생각을 진전시키면 산맥 대신에 지질과 지형으로 길을 찾을 수 있다. 산악인의 표현을 빌리면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따라 올라오면 된다.



백두대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용어이며 과학용어는 아니다. 지질학적으로는 지형이 형성되는 시기나 방식에 따라 지괴나 지향사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지리산 부근의 백두대간은 영남 지괴와 대응된다.


생각이 백두대간에서 끝났다면 오가는 6시간 동안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과학자의 집착은 끈질기다. 당연히 영남 지괴와 옥천 지향사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궁금하였다. 제가 저술한 '크로의 과학사냥'에서는 지진이나 화산의 발생을 판구조론으로 설명하면서 조청의 예를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6시간의 머리 활동을 조청 대신 피자로 설명하기로 하였다.


밀반죽으로 만든 피자판에 토핑을 얹는 행위가 지질이 만들어지는 활동이다. 감자를 토핑으로 얹듯이 퇴적물이 쌓이면 옥천 지향사가 만들어진다. 피자 토핑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위에 토핑을 얹은 대신 땅속에서부터 용암이 올라오면 지괴 토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지질은 역사가 길어 토핑의 종류가 많다.


교과서는 시대별로 다르게 쌓인 토핑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항상 제자리에서 받쳐주고 있는 한반도라는 피자판이다. 핵심적인 요소는 대체로 말이 없다. 제가 학교에서 역사를 못했는데 이유가 위대한 인물만을 외웠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이 보일 때 역사는 제대로 보인다. 피자판이 백성이다.


이 피자판은 초기 지구가 만들어질 때부터 있었다. 그리고 이 피자판이 둘레로부터 압력을 받으며 찌그러져 산과 계곡이 생기게 된다. 오랫동안 힘이 작용하면 태백산맥이 된다.


저처럼 운전하는 사람을 위해 Navigator Map에 지질정보를 넣자고 하면 욕을 먹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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