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림 보는 과학자

예술이란 무엇인가?

by 정연섭

아내가 모리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일 년 전부터 준비를 하더니 두 딸까지 덩달아 도록을 만들고 달력까지 만든다. SNS로 홍보하여 적잖은 지인과 친척 분들이 다녀갔다. 연말 행사에 애경사도 많은 시기에 전시회를 조용히 열지 않는다고 잔소리했다고 두고두고 구박받게 생겼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고, 전시회는 짧지만 서운함은 길다.



어떡해야 이 분함을 풀어줄 수가 있을까? 예술 탄생 배경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다. 과학적으로 생각할 때 떠오른 첫 번째 진리는 이렇다. 생존의 방식이 승화되어 예술이 되었다.


전기차가 위험한 이유는 소리가 없기 때문이라며 소음 장치를 단다고 한다. 또한 동물은 주기적으로 심장 박동 소리를 낸다. 이 신호가 사라지는 날 우리는 얼마나 슬퍼하는가? 식물에는 호흡신호가 없는 탓에 멀쩡한 나무를 베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생물뿐만 아니라 기기 부품도 내가 살아 있다는 Heartbeat를 주고받으며 고장여부를 알리고 있다. 소리뿐만 아니라 그림과 낙서도 내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수단이다.


생존만을 위한 의사소통으로는 심장박동이 충분하지만, 좋아한다는 감정표현에는 심장박동은 부족하다. 좋아했다는 표현을 사랑했다고로 오해하는 선남선녀들이 많지 않은가? 결국 소리만으로 불충분한 탓에 음악이 나타나게 되었다. 동일한 방식으로 그림에서 미술로, 낙서에서 문학으로 바뀌게 된다. 즉 예술이 탄생되었다.


두 번째 진리는 예술은 타인이 공감하는 창작행위이다. 왜 직접 창작하지 않고 타인의 힘을 빌려 표현하는 점을 생각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나의 상태를 내가 잘 아니 내가 표현하는 예술이 나를 나타내는 최선의 방식이지만 상대방은 답답할 뿐이다. 말없이 몸짓만으로 사물을 설명하는 심정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직접 창작하는 대신 미술가 음악가 작가가 등장하여 나의 심정을 대변하여 주기 시작한다. 그들의 작품을 인용하면 오히려 쉽게 의사소통된다.


우리의 심신상태는 시시각각 변한다. 단순히 숨 쉬고 있는 수준을 넘어 기쁨과 슬픔까지도 표현하여야 한다. 이는 전문 예술가에게도 어렵다. 복잡한 심신상태이지만 예술은 이해되게 표현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표현방식은 지속적으로 진보돠어 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찾아내었다. 익숙한 자연의 풍경과 소리로, 얼음과 같은 기하 도형으로 나타내면 이해가 쉽다는 것을. 그렇지만 욕설이나 관능적 표출은 자제하여야 한다는 것을.


아내의 작품 중에 내가 공감하는 작품이 있다. 늘 거실에 걸어둘 예정이다. 아내가 전시회에 대한 나의 태도를 구박할 때마다 그 그림이 나를 구해 주리라고 확신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반도 지형과 피자 토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