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이 길을 찾는 법
집 앞에 반석천이 흐른다. 가뭄에도 물길이 마르지 않는 생명의 개울이다. 봄에는 벚꽃으로 휘날리고 여름에는 금계곡으로 덮인다. 겨울이면 우거진 갈대 사이로 고라니가 돌아다닌다. 주말이며 둑을 따라 내려갔다가 힘들 때쯤 둑 따라 올라오는 산책길이기도 하다. 제가 '크로의 과학사냥'을 쓰다가 글이 막히면 이질적인 과학 개념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이 제방을 걷곤 했다.
달포 전에 반석천에 자전거도로가 놓였다. 무성했던 칡덩굴과 갯버들을 베어내고 깔끔한 아스발트가 뻗어있다. 홍수에도 도로가 유실되지 않도록 하천바닥에 바위들을 박았고 군데군데 조그만 다리도 놓았다. 청소년 수련관과 아파트 단지 인근에는 진입로를 설치하였고, 물놀이하며 하천을 건너도록 징검다리도 놓았다.
반석천은 계룡산 자락인 우산봉에서 발원하여 대전의 3대 하천인 갑천으로 합류된다. 갑천은 다시 금강에 빨려드려 세종, 공주, 부여, 군산을 지나 서해로 연결된다. 아래 지도에서 물길이라고 표시된 하천이 반석천에서 세종시까지의 물 흐름이다. 이 강따라 놓인 자전거 도로를 타면 하루 만에 서해의 바람을 쐬고 올 수 있다.
선상약수라는 말은 세상에서 최고 좋은 것이 물이라는 뜻이다. 물은 길을 내지만 재촉하지 않는다. 항상 현재보다 낮은 데로 흐르면서 주위에 생명수를 공급한다. 물고기가 살고 풀들이 우거진다. 흐르다가 막히면 불평 없이 그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까지 수위를 높이며 인내한다.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은 길을 닦는 활동이다. 강물처럼 현재의 수위에서 더 낮은 길로 흘러가는 방식이 있는가 하며, 전방의 상황을 보고 길을 정하는 경우도 있다. 군대에서 척후병은 길을 내기 위해 앞서간다. 컴퓨터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LookAhead() 함수를 호출하는데 이 함수가 척후병의 역할이다.
더 깐깐하게 길을 내는 방식은 과거의 상태를 고려하여 결정하는 경우이다. 2 Go 한 것이 아까워 마지막 Go를 부를 수도 있다. 요즘에는 사라졌지만 이전에는 가족을 신원 조회하여 신입직원을 채용하기도 했었다. Markovian Process는 고분자 중합에서의 나오는 필수 용어이지만 신원조회로 설명하여 보자. 본인의 능력만으로 채용하면 0 Order Markovian Process, 부모까지 따지면 1st Order Markovian Process, 조부모까지 따지면 2nd Order Markovian Process라고 한다.
정권의 교체도 Markovian Process를 따르는 듯하다. 자연현상에서 별로 나타나지 않지만 우리나라나 미국 정권은 중임이 반복되는 형태처럼 보인다. 즉 A-A-B-B-A-A-B-B- 형태이다. A는 보수 장권, B는 진보 정권일 수 있다. 중임 형태의 정권교체는 2nd Order Markovian Process의 특별한 형태이다. 조건부 확률론으로 정권교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초기 정권에게는 아쉬우므로 한번 더 기회를 주고, 2번 연속 집권하면 적폐가 쌓이므로 정권을 교체한다는 유권자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반론할 분들이 많을 듯한데 정권교체는 엄밀한 법칙이 아니므로 너무 노여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임이라도 중임보다 국민을 실망시킬 수도 있지요.
앞의 지도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반석천을 따라 세종시로 이동하는 길은 빙 돌아가는 길이다. 영원한 물은 서두르지 않는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지만, 주말에만 길을 찾는 직장인에게는 이 방식이 비효율적이다. 세종시가 조성될 때 대전에서 세종까지 자전거도로를 놓았다. 이 도로는 지름길이지만 대신에 하천 같은 식물을 기대할 수 없고 아스파트의 뜨거운 열기만 바이커를 맞아준다. 위 지도에서 동력길이라고 표시하였고 Naver에서 찾은 설계 이미지는 아래 그림이고 실제로는 태양광 패널이 덮고 있다.
반석천의 자전거도로에서 정권교체까지 언급했지만 이 글의 과학적 개념은 간단합니다. 3가지의 길을 내는 방식은 현재만 따져 길을 내는 방식, 과거에 집착하는 Markovian 방식, 미래를 살펴보는 Lookahead 방식입니다. 혹시 내일 주요 결정을 해야 한다면 본인의 의사결정 방식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뒤끝이 별로 없는 편인데 이유는 성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기억력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