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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넘어

내 마음의 블랙홀

by 정연섭

블랙홀 영상이 페북을 달구고 있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를 처리하여 얻었다는 블랙홀을 보면 좀 싱겁다. 불꽃처럼 구체적인 형상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동그란 원이라니. 추상화 화가라 환영할지 모르겠다.

망한 대중을 위해 변명이라도 하여보자. 우리는 이 영상을 얻기 전에도 블랙홀의 상상도를 수없이 보아왔으니 비슷한 영상에 놀라지 않는다.


해명이 궁색하다고? 엄청난 측정자료로부터 가장 단순한 원만 나왔으니 놀랍지 않은가? 자료에 일관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도 부족하다면 좀 더 현학적으로 설명해야겠군요.


선배 철학자의 의식 세계를 보면 우리는 세상을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오감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오감이 자연 세계를 보여주지만 간혹 착각도 불려 일으킨다. 참새는 유리창에 부딪쳐 죽고 물속의 막대기는 꺾어져 보인다. 그래서 철학자는 사람은 이상세계인 이데아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칸트 이후에도 이런 생각을 지닌 철학자들이 많다.


대중들도 철학자의 생각에 동조하는 편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학자는 오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오감을 넘어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석사를 마치고 LG화학에서 8년 동안 물질 분석을 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을 규명할 수 있다고 뻥을 치고 다녔다. 구축한 분석장비들은 오감 너머를 본다. 이 분석장비 탓에 우리는 자연의 원리를 알 수 있다.


내가 다 분석장비는 분자와 같은 미시세계로 향해 있었다. 블랙홀과 같이 거시 세계로 향하는 분석장비는 없었다. 이번 블랙홀 관측에는 전파망원경이 동원되었다. 단백질 구조 분석에 사용되는 X-ray 간섭 장비와 유사하다고 짐작하여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았는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명은 드물었다. 학회에 투고할 의도가 없으므로 전파망원경에 대한 논문을 찾지는 않았다.


전파만원경의 해상도는 수신기의 반경에 비례하는데 망원경을 여러 위치에 설치하면 지구크기만한 수신기를 얻을 수 있음

별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이 λ이고 수신기의 반경이 D이면 전파 망원경의 분해능은 λ/D에 비례한다. 즉 수신기 반경이 클수록 고해상도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만일 전파망원경을 지구 곳곳에 설치하면 지구의 반경만큼 큰 전파망원경을 얻을 수가 있다. 이번 블랙홀 관측에는 남반구의 여러 전파망원경을 연결하여 사용했다.


각각의 전파망원경에서 얻어진 영상을 단순히 겹친다고 블랙홀 영상이 얻어지는 않는다. 빛의 간섭을 활용하므로 동시간대에 측정한 신호들에 복잡한 수학적 처리를 한다.


블랙홀의 밝은 부분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가스가 내는 빛이라고 한다. 파장이 1.3mm라고 하니 라디오 파장인 모양이다. 공기 중에 돌아다니는 라디오파를 당신은 눈으로 볼 수 있는가? 라디오 수신기 외에는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제 정리하여 보자. 우리는 블랙홀을 교육으로 이미 알고 있지만 오감으로 관측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가시광선을 내는 태양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번에 오감을 초월한 방법으로 블랙홀을 관측한 쾌거를 이룬 것이다.


아직도 감탄하기에 부족하죠? 나도 답이 없지만 사족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사실 자연세계는 관측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과학자를 위해 측정 장비를 동원하지요. 안 보고 수용하는 자가 능력 있는 과학자이지요.


그러나 인간세상은 다릅니다. 남을 이해할 수도 없고 자신의 맘도 모릅니다. 그냥 믿음으로 나아갈 뿐이죠. 내 마음의 블랙홀을 어떻게 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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