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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권하는 냐옹이 Jun 16. 2021

[단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중 하나), 걷기

기억하자면, 내 인생에 ‘걷기’가 큰 의미를 지니기 시작한 때는 중학교 1학년 때이다. 물론 직립보행이 가장 큰 특징인 인류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걸음마를 시작할 때만큼 걷기가 환영받는 순간은 없겠지만.     


당시 학교까지는 버스로 7정거장 거리였다. 지금처럼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얽힌 때가 아니었던데다, 애석하게도 집에서 학교로 갈 수 있는 버스도 102번 하나뿐이었다. 그 외 학교 앞까지는 아니지만 102번과 5정거장은 같은 코스로 이동하는 85번 버스도 있었는데, 두 버스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으니... 사람이 많아서 난리였다는 점이다.     


요즘 광역버스 정류장(물론 모든 정류장에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지만)처럼 줄서기는 안드로메다 개념이던 시절, 버스가 오는 순간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에 버금갈만큼 버스 앞문으로 사람들은 달려갔고 버스 기사님이 어디에 서서 문을 여느냐에 따라 선택 받는 자와 선택 받지 못한 자의 운명이 엇갈리는 상황이 매일 이어졌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 몇몇이 새로운 방안을 찾았으니, 그냥 걸어가자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국민학교 걸어가던 시절마냥 10리를 걸어갈 것도 아닌데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7정거장보다는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축지법도 가능했다.      


흔히 ‘걷기’와 연결되는 사색, 주변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느껴보기는 사치였다. 정해진 시간까지 학교에 도착해야 하는, 오히려 행군에 가까웠달까. 하지만 그 걷기가 나에게 준 확실한 효과는 두 가지로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로 완성된 큰 효과를 달성한다. 그 두 가지는 바로 ‘보폭’과 ‘빨리 걷기’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키가 크다는 소리는 전혀 못 듣고 살아왔으니 당연히 친구들은 나보다 키가 컸다. 그 친구들과 주5일을 걷다보니 친구들이 가진 신체의 우위를 따라가려면 보폭이 넓어져야했고 걸음도 빨라져야 했다.     




이건 진화인가. 학교에서 진화에 대한 이론으로 다윈의 진화론과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배웠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흔히 기린으로 설명되는데, 일생을 높은 가지에 있는 잎을 먹으려고 하다 보니 기린의 목이 점차 늘어났고 결국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에 이르렀다는 것이다(물론 라마르크의 이론은 잘못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후성유전학 덕분에 용불용설이 전혀 틀린 이론이 아니란 기사를 본 적도 있긴 하다). 내 보폭이 넓어지고 걸음이 빨라진 건 다윈의 진화론인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인가. 물론 부작용도 있다. 천천히 걷는 사람에 대한 답답함, 무의식적으로 걷다보면 일행보다 앞서 나가는 것 등.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겠지.     


며칠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거리인데 왜 합정에는 자주 가게 되고, 사당에는 자주 안가게 될까.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걷기’와 이어지는 것 같다. 걷기 좋은 골목이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걸어도 차량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가 등이 결국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는가와 연결된다.     


어쩌면 I.SEOUL.U Life에서 여유로운 걷기는 사치일 수 있겠지만, 가끔은 의도적으로 보폭을 줄이고 속도를 줄여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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