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차이도 개인의 능력인가에 대하여
최근에 친언니와 부동산 투기나 세금 관련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 역시 돈을 버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당연한 흐름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 한 구석 찜찜함이 사라지질 않았다. 의식주 세 가지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생존권과 결부되는 요소이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버린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집에 거주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을지 가늠도 안되는데, 10억-20억씩 올라버린 부동산 가격을 들으면 '대체 저 집은 누가 사는 걸까'라는 생각도 갖게 되고 '나 같은 서민도 저런 집에 나중에 살 수는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면서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누군가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그 운이 정말 실력이라 말할 수 있는지. 그저 운은 운일뿐이지 않는지 의아스럽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사람은 온전히 자신의 노력으로만 진학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똑같거나 어쩌면 더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도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가족관계 등의 이유로 공부할 시간적 여유가 나지 않는다거나, '여느 집 다 한다는' 과외 또는 학원교습을 받지 못해서 그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이 '비 명문대'에 진학하게 된 것이 그 사람의 실력이 되는 건가. 노력이 적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요지이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등록금 고민도 안 하는 사람도 있고, 대학시절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하고 사는 사람도 사실 많다. 세상은 그래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직업에서도 보면, (경제적 수준이 안정적이라 볼 수 있는) 회원사 직원의 아이들만이 기관을 다닐 수 있다. 그럼 이 회사의 직원이 아닌 아이들은 이 교육/보육 서비스를 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니 공평하다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그래서 국가 주도의 '기본적인 복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주택 관련 법을 정비하여 인간이 살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은 구축된 곳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주고(용적률/건폐율/조망권 등), 경제 수준에 무관하게 모든 아이들이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육/교육기관을 만들어주고(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 대학생들이 생계를 이유로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등록금을 지원해주는(국가장학금) 것 등이 그것이다. 지금도 물론 시행하고 있으며, 선진국으로 향할수록 이러한 노력은 조금 더 세분화되고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것을 시장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이와 같은 복지의 수준을 낮추게 될까 염려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수준의 복지체계를 구축하더라도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격차는 해소되지 못한다. 노력한 만큼 잘 사는 사람도 누릴 권리가 있는 건데 왜 공산주의처럼 똑같이만 살아야 하냐라고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그러나 사회는 아직 편견으로 가득 차 있기에 흔히 화이트칼라라 불리는 이들의 삶은 존경받으며, 블루칼라라 여겨지는 사람들의 삶은 때로 동정받거나 함부로 안타깝게/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모든 것에 예외는 있지만 대개 사람들은 명문대를 나왔다고 하면 좋은 인식을 가지며, 지방대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은연중에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일반 기업에서 채용을 할 때에도 적용되는 것이 이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 이 점도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 학점이 좋은 사람은 성실했다고 평가받으며 학점이 낮았던 사람은 불성실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단정 지어버린다. 그 학점에 담긴 삶의 사정과 해명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현실적이어야 돈을 많이 벌고, 조금은 이기적이어야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외려 친절하고, 착하게만 살면 손해 보며 호구 취급당한다는 말도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손해 보는 삶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이다'라는 말속에 담긴 것이 개개인의 삶의 조건을 못 본 척하며 결과만을 인정하고, 인간의 각기 다른 사정을 용인하지 않는 편협함이라면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내가 가진 어느 삶의 요소를 진정한 내 것으로 느끼기도 하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내가 이뤄낸 업적이며 '성공'이니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 역시 이러한 사람은 별로야- 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종 반성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어디 있으며, 내가 가진 것 또한 온전한 내 능력이라고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어 다른 사람을 함부로 아래로 보거나 선민의식을 가지는 걸까.'라고 말이다.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여러 난제들이 존재한다. 그 다양한 삶을 모두 보상해 줄 수 없기에 우리는 어떤 일을 겪거나 당한 사람을 보면 '운명이다', '될놈될'이라는 말로 축약하는 것 같다고 가끔 생각한다. 어떠한 사건을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인 <운명>으로 치부할 때, 우리는 쉽게 단념하고 인정하는 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운도 실력이라는 말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운은 그저 운일뿐이다. 그렇기에 당연하게 여기지도, 내 능력이라고 여기지도 않으며 동시에 그 '운'을 갖지 못한 이들과 내가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