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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리 Jun 11. 2022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란 말

직장어린이집 아이들을 마주하며 든 바람

  공립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누구나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공무원이기도 하며, 과도하게 서비스직으로서의 역할보다 교원으로서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도 있다. 영원히 부당하게 해고될 일도 없으며 호봉이 감해질 리도 없는, 어쩌면 유아교육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교직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 터라고 생각했기 때문도 크다. 그렇지만 혼자 정의감에 불타올라 사명감으로 동기부여를 받은 점도 적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고 성장했으면 좋겠다. 경제적인 이유로 꼭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으며, 그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 '내가' 실력 있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날도 참 많았다. 현실로 돌아와, 직장어린이집의 교사가 된 지금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상스러운 감정을 종종 느낀다. 이유인 즉, 이곳의 어린이집은 '아무나' 다닐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직장어린이집의 설립 목적은 사내 직원들의 복지 향상과 양육 및 교육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설립한 데에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회원사 또는 해당 회사의 직원 자녀들만 다닐 수 있다. 아무리 돈을 더 내고 '다니게 해 주세요'라고 한들, 회원사 직원 자녀가 아니면 다닐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원들의 자녀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업계에서 나름대로 철저한 선발절차를 거쳐 교사를 뽑아 교사교육을 한 후, 엄선한 교육/보육 프로그램에 의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따라서 직장어린이집 교사의 처우가 일반 가정/민간어린이집이나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의 교사보다 한편으로는 조금 더 낫다- 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일견 이해가 된다. 좋은 교사를 자회사의 어린이집 교직원으로 배치하기 위해서는 그 교사들의 급여체계, 복지체계 역시 타 유형 유치원/어린이집에 비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장어린이집의 교사들은 다른 유형 기관보다 4년제 출신의 교사가 비율상 많다. 또는 아동학과가 아닌 유아교육과 출신 교사들의 비율도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유아교육과를 나왔음에도 직장어린이집에 취업하는 교사가 늘고 있으며 어떤 직장어린이집은 '학사'이상의 학력을 가진 교사만을 채용하는 곳도 있다. 전문대학교 2년제 아동보육과를 졸업하거나 평생교육원/학점은행제, 사이버대학교 등을 통해서도 자격증 발급이 되는 보육교사 특성상, 더군다나 전문대 비율이 4년제에 비해 훨씬 많은 현직 교사 특성상 직장어린이집에서 점차 더 높은 학력이나 스펙을 가진 이를 채용하는 것은 회사 직원들(학부모)과 입사할 교사 개인 모두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선택 중 하나인 것이다. 교사의 학력이, 학과가, 학점이, 그들의 경쟁력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학력이 절대적인 유능을 판단할 근거가 되지는 못하나 학제, 학과, 학점, 그리고 외국어 능력까지도 보는 기관이 생길 정도로 인재를 뽑으려는 직장어린이집의 노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순리이기도 하니 씁쓸한 현실이다.


 관련하여, 생각보다 이곳에는 생각보다 '대단하다'라고 느껴지는 분들이 많다. 다른 기관도 그러하겠지만 상호작용 하나하나가, 수업 준비 하나하나가 대학시절 배웠던 그 이론적인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유형 기관보다 보육시간이 길고 업무량이 많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말이다. 대학시절 교수님께 들은 말 중 하나가 '현장과 이론은 다르다.'라는 말이었다. 그만큼 현장에서는 사교육 중심으로, 학습지 중심으로 가르치는 분위기가 많다는 뜻이기도 했겠지만. 대학시절처럼 교구를 직접 만들고, 철저하게 상호작용을 하고- 하는 일이 현장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이기도 하셨겠거니. 싶다.


그러나 생각보다 내가 들어와 본 직장은 이론과 거의 일치하는 공간이었다. 이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구나. 아이들에게 정말로 진심을 다하기 위해 FM으로 물심양면 노력하시는구나. 생각했다. 1초도 쉬지 않고 교육적 의미를 찾기 위해 언어적/비언어적 상호작용을 하셨으며 부정적인 피드백은 특히 사용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물론 재단 내 교육에 의해 판에 찍은 듯 비슷한 상호작용 방식을 가진 점도 있어 무조건 좋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그리고 그분들을 따라 나 또한 조직화된 공간 안에서 그들의 언행을 배우고 있다. 그즈음부터 고개를 든 생각이 있었다. 이런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직장어린이집/민간어린이집/가정어린이집/유치원의 차이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어린이집보다 유치원이 더 좋은 곳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많다. 나는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그 세부적인 특성들을 알기에 직장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윤택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부러운지 느끼는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루 종일 놀리기만 하고, 애보고 밥 먹이고 재우는 것뿐일 수 있지만 매주 돌아가며 주제에 따라 활동/놀이를 계획하고, 자료와 교구를 준비하고, 실제 놀이 흐름에 따라 지원하고, 환경을 재구성해주고 변화시켜주는 것이 기관에서 진행되는 교사의 업무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전국의 모든 유아교육기관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좋겠지만. 재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그렇지 못한 곳들이 참 많다. 기본적으로 좋은 교육을 위해 교구를 만들고, 좋은 놀잇감과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교사 교육비를 비롯한 인건비뿐 아니라 재료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직장어린이집은 경제적인 지원이 풍족한 편이다. 그러니 아이들 먹는 음식에 장난도 치지 않고 석식까지 잘 나온다고 알려져 있는 거겠지. 즉, 이곳처럼 높은 인건비가 드는 교사를 뽑으려 하고(학력을 인정해주고), 음식에 들어가는 비용을 남는 것 생각 안 하고 다양하고 넉넉하게 제공하며. 다양한 교육적 경험을 위해 재료비를 지원하는 유치원/어린이집이 많지 않으므로- 모든 아이들이 같은 교육을 받고 자라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곳에서 일하며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나, 가끔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날에 꿈꿨던 무언가를 하나 잃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공립유치원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진 아동들의 비율이 직장어린이집과 같은 기관보다 훨씬 많다. 국립 기관이니 교육비도 들지 않는다는 최고 장점을 지니고 있기에 더욱 그러한 아이들이 많은 것도 있겠지만. 이미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교육공무원이 된 공립유치원 교사가 있는 그곳은 아이들이 질 높은 놀이중심 교육을 받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공립유치원에 다니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므로 사회 어딘가에는 소외된 아이들이 존재할 수 있다.


 모든 기관의 아이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직장어린이집만큼의 재정적 지원과 깔끔한 환경, 그리고 교육프로그램 등에 의해 교육받으며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만이 좋다고 말하는 것도 다소 웃긴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교사로서 내가 이곳을 힘겨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직장어린이집은 진심으로 아이들이 생활하고 성장하기에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다니고 싶을 정도로,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다니게 하고 싶을 정도로. 이 아이들은 참 복이 많다. 부럽네.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될 정도로.


  단 하나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고 똑같이 공평하게 질 높은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경제적 수준이라는 이름 아래에 선을 그어 이 세상의 많은 영유아들이 어린 나이부터 교육 수준의 차이와 차별을 느끼며 자라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 경제 수준의 차이가 아이들의 교육 수준의 차이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어떤 아이도 존귀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귀한 자식이고 사랑스러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나야 할 새싹들이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를 떠올리고,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이 소리를 내주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언젠가 먼 미래엔 교사로서의 내가 어느 유형의 기관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더라도 -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옷과 양말을 신고, 청결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는 영유아를 보고 '부럽다', '복 받았네'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저 그것이 모든 아이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져 마땅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 사람은 참 현실감각이 없네.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네. 의 '저 사람'이 나인 것 같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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