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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빛 Jun 10. 2018

온 몸으로 리얼한 공포를 경험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사회를 다녀와서



나는 쉬우면서, 깊이도 있고, 가슴을 울리며, 내러티브와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를 선호하는 보통의 영화 애호인이다. 자비에르 르그랑 감독의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많은 해외영화제에 오르내리리며 호평을 받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예술 지향의 심오한 프랑스 영화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다지 끌리지는 않는 마음으로 시사회를 보러 갔다. 


"한번 더 보면 병 걸리겠다!"



영화를 함께 보았던 일행이 한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알쏭달쏭한 전개와 뒤따라 찾아오는 공포감에.

도데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영화 내내 알쏭달쏭한 전개에 미간에 힘이 들어갔지만 후반부로 흘러 갈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에 감정이입 되었고, 막바지에서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마치 영화의 인물들이 된 것처럼 그들의 공포가 그대로 전해졌다. 도데체 어떻게 한 것일까. 어떻게 머나먼 나라의 한 극장에 앉은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에게 이토록 리얼한 공포를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휴휴. 





관찰자의 시선에서 참여자의 시선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면 / 출처 = 다음 영화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가정법정의 줄리앙의 부모님, 변호사들, 판사가 등장한다. 작은 방에서 판사가 줄리앙의 편지를 읽는다.


아빠를 영영 안 보면 좋겠어요.


줄리앙은 아빠를 영원히 보지 않기를 원한다. 아빠는 자신이 선량하고 사람이며 아이 엄마의 농간으로 아들이 이런 편지를 썼다고 주장한다. 엄마의 입장을 주장하는 변호사의 변호에 마음이 설득 당하는가 했더니, 아빠 쪽 변호사의 논리정연한 주장에 홀라당 마음이 뺏긴다. 카메라는 편지의 주인공이 없는 자리에서 줄리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마치 작은 방에 숨어든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다. 그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점점 빠져 들어간다.






클로즈업의 압박과 긴장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면 / 출처 = 다음 영화



줄리앙의 편지 내용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아빠를 평생 보지 않겠다니, 그저 평범한 아빠처럼 보이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정말 엄마가 아이를 조종한걸까?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빠 앙투완? 엄마 미리암? 줄리앙? 게다가 누나 조세핀? 영화 속의 인물들이 한가지씩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여느 이야기에서 나올 듯한 이혼 가정의 이야기는 점점 미스테리물로 흘러 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면 / 출처 = 다음 영화


이야기가 의식을 미궁으로 끌고가는 동안 카메라가 관객에게 힌트를 준다. 아빠 차에 탄 줄리앙은 아빠와 함께 있는 공간이 불편해 보인다. 카메라가 줄리앙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거구인 아빠의 몸집은 차를 너머 스크린에 가득 채워졌고, 스치듯 한번씩 비춰주는아빠의 무표정한 얼굴, 눈빛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싸늘하다.


평범한 장면에 초점을 맞춘 시각적인 압박감이 서서히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변한다.






극도의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소리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면 / 출처 = 다음 영화



별 일 있을까? 없을까? 아슬아슬해도 지금까지 별 일 없었는걸.

계속 헷갈리게 만드는 늑대소년 같던 내러티브는 막바지에 가서 보란듯이 충격을 준다. 투명인간 관찰자로 인물들의 공간을 바라보던 관객이 막바지에서는 완전한 참여자, 나아가 줄리앙의 시선이 되어 버렸다. 아니, 줄리앙의 감정과 하나가 된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떨어진다. 왜? 모르겠다. 마치 내가 겪는 듯 리얼한 공포에 빠져들었나 보다.


극도의 어둠 속에서 화면을 장악하는 현실의 소리는 줄리앙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공포 속에서 의지하는 한 명의 목소리, 한 명의 시선.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을 공포에서 구출한다. 영화는 공포와 구원의 소리 외에 배경 음악도 없이 끝난다. 정말 끝난 것일까? 정말? 마지막까지 헷갈리게 만든다.


첫 장편 영화임에도 74회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과 미래의 사자상을 수상한 자비에 르그랑 감독. 관객의 시선과 마음을 요리하는 연출력에 존경심이 올라온다. 여러 매체에서 말하듯 천재 감독의 등장이라 할 만하다.


알쏭달쏭한 내러티브와 심플한 화면 구성의 힘을 온전히 살아난 영화.

꼭 영화관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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