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쿠퍼 감독의 몬태나(Hostiles, 2017) 시사회에 다녀와서
영화는 관객을 설득한다. 처음엔 사랑하기 어려운 주인공의 단면을 보여주고 '어때 사랑할 수 있겠어? 어찌되나 한번 볼까?'라고 후훗 웃으며 바라본다. 주인공 내면 단단한 바닥 아래에 숨은 정서를 서서히 드러내며 '너도 그런 마음이 있지?' 라고 말한다.
조셉은 '나쁜' 사람이다. 보호구역에서 도망간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잡아오는 냉혈한, 인디언 추장보다 인간의 머릿가죽을 더 많이 벗겼다는 전설적인 미군 대위다.
전역을 앞둔 조셉은 대통령이 내린 중요한 임무을 받는다. 암에 걸린 인디언 추장 옐로우 호크와 가족을 고향 몬태나까지 이송하는 임무였다.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잃은 그에게 인디언은 적이며 증오의 대상이다. 그런 그가 인디언 추장을 보호하다니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인디언에게 사랑하는 이들를 잃은 백인과 백인에게 삶을 빼앗긴 인디언이 대장정을 떠나는 길, 인디언의 손에 어린 두 딸과 갓난아기 그리고 남편을 잃은 로잘리가 합류한다. 조셉은 예를 갖추어 그녀를 정성껏 보살핀다. 영화 초반과 달리 조셉은 망연자실한 그녀의 감정을 헤아리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부하들에게 인간적이며 합리적으로 대하는 상관이었다. 그는 정녕 나쁜 사람인가. 일가족이 머릿가죽이 벗겨지는 현장에서 살아남은 로잘리가 추장과 가족을 처음 만날 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울분과 공포에 목이 메는 장면에서 조셉의 고통이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누구로부터 시작된 분노일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오랫동안 인디언의 살아왔던 땅을 유럽인들이 발견하고, 소유권을 주장하며, 인디언을 몰아냈고, 인디언은 저항했으며, 핍박과 죽임을 반복했다. 조셉은 유구한 인간 역사의 순간에서 홀로 분노를 태웠다. 목이 타고 감정이 타고 표정이 타버렸다. 자신의 분노가 인디언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적과 동지가 바뀌는 상황에서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가. 로잘리가 조셉에게 말한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예요."
분노로 가렸던 조셉의 큰 상처는 1000마일의 여정 동안 서서히 아물어간다. 언제부턴가 마음으로 인디언 추장과 가족을 대하는 조셉. 적이었던 인디언은 서서히 사라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써 통하는 마음만 남는다.
<신화의 힘>에서 소개하는 시애틀 추장이 워싱턴의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하늘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땅을 어떻게 사고 삽니까?
... 맑은 대기와 찬란한 물이 우리 것이 아닌 터에 어떻게 그걸 사겠다는 것일런지요?
... 우리는 나무 껍질 속에 흐르는 수액을 우리 혈관에 흐르는 피로 압니다.
우리는 이 땅의 일부요, 이 땅은 우리의 일부올시다.
향긋한 꽃은 우리의 누이올시다. 곰, 사슴, 독수리..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형제올시다.
험한 산봉우리, 수액, 망아지의 체온, 사람.. 이 모두가 형제올시다.
... 우리는, 땅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이듯 그대들도 이 땅의 일부올시다.
...우리는 결국 형제인 것입니다.
영화 내내 장대한 자연의 풍경이 펼쳐진다. 끝없는 수평선, 살아 숨쉬는 숲, 굽이치는 바위 산맥.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수평선 위에서 작은 마음에 불타는 바윗덩어리를 품고 살아보려고 애쓰는 삶이 눈물나도록 힘겹다. 영화를 보는 동안 물에 흠뻑 젖은 겨울 이불을 끌고 다니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비록 조셉의 분노와 상처 만큼은 아닐지라도 나에게도 분노.. 슬픔.. 상처로 인해 무감각 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자연은 작은 인간들이 살고, 사랑하고, 싸우고, 죽이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다시 싸우다가 지쳐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바득바득 분노의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때가 되면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준다. 증오가 끝나는 그 곳에서 다시 살아갈 힘이 솟아나도록.
'나도 너도 이 땅의 일부다. 그러니 우리는 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