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의 위로 01
찰칵, 사진을 찍습니다.
찰칵, 찰칵 또 찍습니다. 함께 있던 이가 묻습니다.
“도데체 뭘 찍는거니?”
아, 글쎄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끌렸거든요. 찍어야 한다는 의지가 일어나기도 전에, 이렇게 찍으면 예쁘겠다는 생각이 일어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몸을 끌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화려한 꽃도 아니고, 삐까번쩍 있어 보이는 건물도 아니고, 아리따운 사람들도 아니예요. 제가 본 것은 찍힐 만하다고 할 수 없는 보통의 모양들인데요. 왜 끌렸을까요?
영화 컨텍트(Arrival)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어느 날 내려온 비행물체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구를 공격할 것이라며 접촉하려고 노력합니다. 계속된 실패 끝에 언어학자 루이스에게 소통할 임무를 맡기지요. 거대한 우주선 안, 외계인이 형체를 드러냅니다. 나무뿌리 같은 모습에 어디가 입인지, 눈인지, 말을 하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도데체 이들과 무슨 방법으로 소통을 할까요. 루이스는 보호복을 벗고 작은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습니다.
“나는 루이스예요. 당신은 누구예요?”
지극히 평범한 인사를 건냅니다. 외계인이 답을 합니다. 영어로? 한국어로? 아니요. 허공에 검은 원형 하나를 뿌렸어요. 인간들은 난리가 나지요. 이게 무슨 뜻일까. 지구를 공격하겠다는건가. 우왕좌왕 대책을 세웁니다.
루이스는 포기하지 않고 외계인들이 건네는 인사를 이해했어요.
"안녕, 만나서 반가워요"
외계인들은 그저 인간과 대화하고 싶었던 거지요.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에 무기력하던 마음, 열심히 애를 써도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허탈감, 세상에 통하지 않는 언어로 혼자 떠드는 것 같은 답답한 날들이 있었어요. 힘든지도 모르고 떠밀려 가던 나날들이었어요.
어느 날,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던 모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페 테이블의 모서리, 건물 구석의 비상 전화기, 옷자락 끝의 작은 단추, 예쁜 접시 아래의 로고, 사각 모양과 사선 무늬가 만난 가방, 원 모양과 묵직한 철이 만난 맨홀, 사각 테이블 위 반원의 유리잔이 보였어요.
어? 모양이 말을 하네. 그들의 말소리가 귀에 찰떡같이 들어옵니다. 모양이 모양으로 전하는 위로가 들립니다. 사람에게 상황에 지쳐 무심코 바라보던 무심한 모양이 말을 건내고 있었어요. 찰칵! 모양의 위로를 담았습니다. 혼자서 헤쳐나가야만 할 것 같던 세상 여기저기에서 숨은 위로들이 보입니다.
모양의 위로를 전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