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간의 온도를 만지다

by 연월랑

여름방학이면 나는 동생과 함께 버스를 탔다.
2번 버스였다.
방학 동안 쥐어 받은 용돈을 모아
왕복 버스비와 간단한 간식값을 계산하면,
그 하루의 갈 수 있는 거리는 정해져 있었다.

정류장 이름은
‘국립중앙박물관 앞’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먼저 근정문이 보였다.
문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안으로 들어간다는 기분보다
조금 다른 시간으로 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을 지나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공기는 분명히 달라졌다.
바닥은 차가웠고,
천장은 높았으며
빛은 먼지를 머금은 채
천천히 떨어졌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췄다.
발소리만 길게 이어졌고,
그 소리마저
공간에 흡수되는 듯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도자기의 미세한 균열,
금속에 남은 어두운 윤,
손이 닿았던 자리를
아직 기억하는 것들.

어린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다만
사람은 사라졌는데
물건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전시를 따라 걷다 보면
다리가 먼저 아파왔다.
입구 근처 의자에 앉아 쉬며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매점 유리 너머의 엽서와 우표를 보다가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때는
버스비가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다.

밖으로 나오면
해가 이미 기울어 있었다.
돌계단 위로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에는
돌 냄새와 먼지,
늦은 오후의 빛이 섞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2번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을 오래 보았다.
도시는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 낯섦이
조금은 안전하게 느껴졌다.

이제 그 건물은 없다.
박물관은 용산으로 옮겨 갔고,
근정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간도
기억 속에만 남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배운 감각 하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는 것.

손에 닿지 않았던 유물들이
지금도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여름방학의 박물관에서
처음 알았다.

작가의 이전글화양연화(花樣年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