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머무르던 간격

by 연월랑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느슨했다.

정확히 말하면,
붙잡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함께 있어도
항상 같은 방향을 보지는 않았다.
창밖을 보는 사람과,
탁자 위의 물컵을 바라보는 사람.
시선은 어긋났지만
그 어긋남이
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말은
필요한 만큼만 오갔다.
묻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이미 많았고,
설명하지 않아도
넘어가는 순간들이
자연스러웠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기보다,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고,
서두르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았다.

어느 오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 있었다.
기억할 장면도,
붙잡을 말도 없었다.
그저
같은 공간에
서로의 숨이
겹쳐 있었다.

그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별하지 않은 날이
계속될 거라
믿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건
행복이라기보다
안심에 가까웠다.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는 느낌도 없이,
잃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

그래서
우리는
그 간격을
조정하지 않았다.
조금 멀어져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머무르던 간격은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던 시간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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