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남지 않은 말

by 연월랑

그날의 시작은
아무렇지 않았다.

늘 그랬듯
빛은 창을 넘었고,
공기는
조금 늦게 움직였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있었고,
그 사실이
이상하지 않았다.

차이가 있었다면,
말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굳이
꺼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괜찮아?”
라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설명 대신
잠깐의 침묵이
자리를 대신했다.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심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말은
도착하지 않았다.

보내지 않은 것도,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기다리지 않게 된 것이다.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늦게 알아차렸다.

그날,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았다.

같은 방에 있었지만,
시선은
각자의 시간에 머물렀다.
소리는 있었고,
움직임도 있었지만,
닿지는 않았다.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중요한 일은

다른 얼굴로
온다고 믿었으니까.

지금은
알고 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다만,
그 자리가
한동안
비어 있었다는 사실만이
늦게 남는다는 것을.

그때,
무언가를
말했어야 했는지,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것이
이미 선택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날 이후
우리는
같은 침묵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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