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회사에 가지 않았다.
아침 햇살은 평소보다 밝았는데, 몸은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출근 버스 대신 강화행 버스를 탔다.
창가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창밖만 봤다.
충동은 아니었다.
충동이면 더 쉬웠을 것이다.
그냥… 너무 버거워서.
그 말이 제일 정확해서 더 싫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친구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오늘은 쉰다.”
거짓말이었지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같이 망가지는 쪽이라서.
강화터미널에 도착하자 마니산 정문으로 가는 버스가 보였다.
사람들로 붐빌 것 같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 조용한 길이 더 끌렸다.
그래서 정문행을 두고 반대편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쪽, 산의 뒤편으로 들어가는 길.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산 입구로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주변은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처음엔 조금 낯설었는데, 곧 그 낯섦이 마음에 들었다.
돌계단 대신 거친 바위길이 이어졌고,
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가파른 구간도 있었다.
숨이 차올라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왜 여기 왔는지’부터 떠올라 버릴 것 같았다.
중턱쯤 올랐을 때 큰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앉아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찬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머릿속이 잠깐 비워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피하려는 게,
일인지…
내 자신인지.
발밑의 길은 좁았다.
그 좁은 길 앞에서 나는 다음 걸음을 오래 망설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나한테만 할 수 있는 질문이었고
그래서 더 곤란했다.
다시 길을 잡아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양옆으로 산등이 부드럽게 이어졌고,
바람은 나뭇잎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발밑의 돌길은 울퉁불퉁했는데
그 소리가 묘하게 일정했다.
걷는 동안 마음이 정리되진 않았다.
정리되는 대신,
마음속에 있던 것들이 자리를 바꾸는 느낌만 났다.
이런 말이 어이없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날은 딱 그 정도가 적당했다.
능선을 따라 한참을 오르자 정상의 성루가 나타났다.
시간이 묻은 돌담이 바람을 받아 낮게 울었다.
그 위에 올라서자 멀리 바다가 펼쳐졌다.
햇살이 물결 위에서 부서지며 산 아래 세상을 덮고 있었다.
그 풍경 앞에서
나는 뭔가를 결심하거나 다짐하지 않았다.
다짐 같은 건,
월요일마다 하기도 쉬워서.
대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만들면 그 순간부터
내가 나를 설득해야 할 것 같았다.
성루의 돌 틈새로 스며든 바람이 옷깃을 스쳤다.
차가웠고, 그만큼 또렷했다.
나는 하늘과 바다 사이를 오래 바라보다가 난간에서 내려왔다.
높은 산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쉽게 내려올 수 없는 자리에 잠시 서 있었던 것 같았다.
내려가는 게 쉬워서가 아니라,
내려가면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갈까 봐.
내려올 땐 정문 돌계단 길을 택했다.
계단 사이로 붉은 노을이 스며들었다.
산 아래로 내려오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입구에는 ‘입산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제야 조금 늦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택한 조용한 길이
원래부터 조용했던 게 아니라
그날은 애초에 막혀 있었던 길이라서.
버스에 올라타자 창밖으로 마지막 빛이 흘렀다.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누구에게도 “괜찮아졌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진 게 아니라,
그냥 하루를 버틴 거라서.
마니산 바람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끔 생각난다.
내 어깨를 스칠 때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끝내 말하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