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그 느린 연결의 밤

by 연월랑

1990년대 중반이었다.
집에는 컴퓨터 한 대와 전화기 하나, 작은 모뎀이 있었다.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그 이름들은 서비스라기보다
어딘가로 이어지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컴퓨터를 켜면
먼저 모뎀을 연결했다.

삐─
드르르르─
찌익…

익숙한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 소리가 끝나야 화면이 바뀌었다.

소리가 멎은 뒤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화면은 바로 뜨지 않았고,
커서는 한동안 멈춰 있었다.

그 몇 초 동안
나는 그냥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푸른 화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색이었다.
그 앞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조금 느려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채팅방에 들어가고,
게시판을 읽고,
내가 그린 그림을 올렸다.

그림은 대부분 손으로 그렸다.
디지털 작업은 드물었고,
학교 컴퓨터실의 스캐너를 빌려
이미지를 파일로 만들었다.

스캔 버튼을 누르고
기계가 천천히 움직일 때마다
괜히 주변을 살폈다.

완성된 파일을 저장하고,
집에 와서 다시 접속했다.

내 그림이 화면에 뜨는 순간,
누가 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우지는 않았다.



1996년쯤이었다.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설치하면
외국 사이트가 열렸다.

그 무렵
나만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졌다.

HTML 책을 펼쳐 놓고
밤마다 코드를 따라 쳤다.

태그 하나를 잘못 닫으면
화면이 깨졌다.
다시 고치고,
다시 저장했다.

며칠 뒤
내 이름으로 된 도메인을 샀다.

알파벳 몇 개와 점 하나.
그 주소를 처음 입력했을 때
화면이 뜨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페이지가 열리자
짧은 문장 하나와
만화 한 컷이 나타났다.

Welcome to my World.

그 문장은 그대로 두었다.



밤 11시가 넘으면
전화요금이 줄었다.

그 시간에 맞춰
전화선을 꽂았다.

모뎀이 다시 울렸다.

가끔 전화가 걸려오면
연결은 바로 끊겼다.

“또 인터넷이야?”

집 안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나는 말없이 모뎀을 다시 눌렀다.

연결이 되면
그날은 조금 오래 앉아 있었다.

화면 속 글들을 읽고,
모르는 사람들의 말을 보고,
내가 올린 그림을 다시 열어봤다.

누가 봤는지는 몰랐다.



지금은
전화선도, 모뎀 소리도 없다.

그때 쓰던 디스켓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가끔
그 시절 화면이 떠오른다.

푸른 배경,
느린 로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몇 초.

그 앞에 앉아 있던 시간만은
아직 남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던 순간들이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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