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작 - 도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 위에서 물방울들이
서로를 밀어내며 흘러갔다.
섬에서 불던 바람이
모양을 바꿔
도시의 창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조금 낯설었다.
비에 섞인 냄새는
쇠 냄새가 아니라
젖은 아스팔트 냄새였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이 아주 조금씩
조여 왔다.
섬에서의 숨은 깊었고,
여기서는
짧았다.
책상 위에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누렇게 변한 종이쪽지.
번진 글씨 사이로
숫자만 남아 있었다.
그 옆에서
충전 중인 휴대폰이
미묘하게 떨렸다.
나는 번호를 누르다
마지막 숫자 앞에서 멈췄다.
잠시 창밖을 보았다.
비가 멈추고 있었다.
숨을 한번 고르고,
숫자를 눌렀다.
“…여보세요?”
목소리는 분명 그였지만,
곧바로 알아듣지는 못했다.
기억 속의 음성과
지금의 음성 사이에
시간이 끼어 있었다.
“나야.
섬에 살던 바람.”
잠시 말이 없었다.
“아…
진짜 오랜만이다.”
그 말은
반가움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다시 한번 낯설었다.
섬에 있던 얼굴은
아니었다.
그가 걸어왔다.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말보다 먼저
변화가 보였다.
“야, 오랜만이다.”
그 말 위로
잠깐 섬의 풍경이 겹쳤다가
사라졌다.
카페 창가에 마주 앉았다.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말이 비었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뒤집어 놓았다.
컵이 놓이고 나서야
이야기가 이어졌다.
“섬에서는 잘 지냈어?”
“응.
그냥 비슷했어.”
나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너 기억나?
등대 아래서 바람 불던 날.”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그땐 어렸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덧붙였다.
“솔직히,
그렇게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는 데는
나랑 안 맞아.”
말은 가볍게 나왔고,
가벼운 말 뒤에
공기가 늦게 가라앉았다.
“여기가 편해.”
나는 컵을 내려놓았다.
손잡이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너 아직도 섬 얘기하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짧은 말들이 오갔다.
말보다 커피가 먼저 식었다.
나는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섬에서 가져온 소리야.”
그는 잠시 듣다가
창밖을 보았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겹쳤다.
유리창 밖에서는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여기선
그냥 잡음 같다.”
나는 녹음기를 껐다.
다시 켜지 않았다.
해가 지고
강물 위로 불빛이 흔들렸다.
난간에 녹음기를 올려두었다.
이번에는
녹음을 하지 않았다.
“섬에선 밤이 조용했지.”
그가 말했다.
“여긴 계속
뭔가가 지나가.”
강 건너편에서
전광판 불빛이 바뀌었다.
우리는 강을 바라봤다.
물 위에 비친 불빛은
붙어 있다가
금방 흩어졌다.
그는 잠시,
내 옆에 서 있는 자신을
확인하듯
숨을 고쳤다.
밤공기가 차가워졌다.
나는 헤드폰을
그의 귀에 씌웠다.
이번에는
섬의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파일이었다.
그는 잠시 듣다가 말했다.
“이것도 소리네.”
신호가 바뀌었다.
자리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멀리서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같은 강둑을 걸었다.
하지만
같은 속도는 아니었다.
그는 앞을 보았고,
나는 강을 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이번에는,
나만 들었다.
나는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