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말

침묵의 서 2장

by 연월랑

그 밤은
길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사람이 쓰러졌다.
다시 닫혔다.

소리는 많지 않았고,
비명은
오래 남지 않았다.
마치
기억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칼은
묻지 않았고,
망설이지도 않았다.

정도전은
끝까지
달아나지 않았다.

그는
이 싸움이
전투가 아니라
정리라는 것을
늦게서야 받아들였다.

몸이 먼저 상처를 입었고,
말은
그 뒤에 나왔다.

“나라를
내 방식으로
지키려 했다.”

그 말은
설명이 아니었다.

그가 선택해 온 시간들이
더 이상 줄어들 수 없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칼을 든 자도,
쓰러진 자도
그 침묵을 깨지 않았다.

이방원은
칼을 거두지 않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라는
남아 있는 사람이 지킨다.

죽은 사람은
나라를 만들지 못한다.”

짧은 말이었다.

정도전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말이 더해질수록
이 밤이
옳고 그름으로
정리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이미
이 자리를 떠나 있었다.

그날 밤,
궁 안의 불은
끝까지 꺼지지 않았다.

태조는
모든 보고를
한꺼번에 받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왕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드리워진 그림자만이
길게 꺾여 있을 뿐이었다.



며칠 뒤,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
전해졌다.

전장에서 돌아온 자들,
기록에 이름이 없는 자들,
그리고
칼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들.

윤검도
그중 하나였다.

“정도전이
그렇게 말했다더라.”

누군가가 전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방원은
그렇게 답했다더라.”

말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방향은 같았다.

누가 옳았는지보다,
어떤 말이
더 오래 남았는지가
이야기되었다.

윤검은
그 말을
조용히 들었다.

현무의 침묵,
주작의 마지막,
그리고
이제는
말로만 남은 사람.

그는
그제야 알았다.

전장은 끝나도
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순간,
윤검의 손이
칼자루를 한 번 더 눌렀다.
힘을 주기보다는
놓치지 않으려는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칼이
언젠가는
자기 이름을 부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날 이후,
칼은
손이 아니라
말속에 있었다.

말은
칼보다
더 오래 사람을 베었다.

윤검은
그 사실을
아직
말로 옮기지 못한 채
침묵 속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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