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바다는
예전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섬에 닿은 것은
이미 여러 계절 전이었고,
그 사이
바람의 결이 바뀌었으며
돌 틈의 풀빛은
더 깊어졌다.
파도는
같은 자리에서
다른 소리를 냈다.
윤검은
그 변화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제주는
여전히
조선의 손길이 완전히 닿지 않은 땅이었다.
이름은 있었으나,
질서는
아직 느렸다.
윤검은
검을 쥐지 않았다.
버리지도,
잊지도 않은 채
그저
곁에서 멀리 두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은
손이 먼저
허공을 더듬는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손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연은
섬의 시간에
먼저 익숙해졌다.
“이제는
사람들이
우릴 묻지 않아.”
윤검은
잠시
파도 끝을 보았다.
“그래도
지워진 건 아니겠지.”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잊히는 것과
지워지는 건
다르니까.”
그 말은
바람보다 늦게
윤검에게 닿았다.
그는
그 말이
위로인지,
경고인지는
끝내 묻지 않았다.
소식은
늦게 도착했다.
배를 건너온 말이었고,
이미
굳어버린 이야기였다.
“이방원이
왕이 되었다 하오.”
놀라움은
없었다.
그 이름은
이미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름처럼
들렸다.
윤검은
잠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의 길이겠지.”
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내
칼을 내려놓지 않았네.”
윤검이
낮게 말했다.
“아니.
그는
칼을 선택한 거야.”
그 말은
확신이라기보다
여백에 가까웠다.
연은
윤검을 보았다.
그의 눈은
왕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시간을
향해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윤검은
바닷가로
걸어 나갔다.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발걸음은
한 번
멈췄다.
검은
이미
무거운 물건이 아니었다.
들고 다닐 이유가
사라진 것에
가까웠다.
윤검은
검을
바다에
맡겼다.
철이
물속에서
잠시
빛을 남기고,
이내
사라졌다.
소리는
없었다.
의식도
없었다.
다만
손에 남은
가벼움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손을 내리지 못했다.
허공에 남은
손의 형태가
아직
검을 쥐고 있는 것처럼
굳어 있었다.
연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말하는 순간,
그가 다시
칼을 찾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윤검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그때서야
그는
검을 버린 것이 아니라,
검에게서
벗어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만약 그날
검을 들고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을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따라왔다.
그러나
그 생각을
끝까지 붙잡지는 않았다.
붙잡는 순간,
다시
칼을 들어야 할 이유가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이
곁에 있었다.
몸을 기댄 것은 아니었지만,
숨의 속도는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연이 물었다.
윤검은
대답하지 않고
섬을 바라보았다.
도망칠 이유도,
도착해야 할 곳도
없었다.
그 사실이
안도인지,
두려움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숨을 한 번
늦게 내쉬었다.
그날 이후,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바다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섬은
조용히
계절을 넘겼다.
다만
검이 사라진 자리만큼
사람의 숨이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밤에는,
윤검은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손이
다시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그는
그 손을
천천히
쥐었다가,
풀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 사실이
그를
조금 안심시키면서도,
조금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바다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만이
그가 선택한 삶이라는 것처럼
오래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