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쓰이는 것

by 연월랑

여름은 회사 안에서 먼저 시작됐다.
창문은 열리지 않았고,
에어컨은 일정한 속도로 돌아갔다.

나는 아침마다 같은 출입증을 찍고 들어왔다.
들어오는 일과 나가는 일의 순서는 늘 정확했다.

바깥의 푸른빛 대신,
실내에 갇힌 공기가 천천히 식어 있었다.
눌린 빛이 사람의 피부 위에 오래 머물렀다.


문서는 오전에 끝났다가 다시 열렸다.
점심 전과 후에도 같은 화면이었다.

바뀐 것은 단어 하나였고,
의미는 그대로였다.

이미 쓴 문장을 다시 고치는 일이 반복됐다.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고,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일이었다.

나는 쓰는 사람이기보다,
이미 쓰이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결정이 지나갈 때마다,
내 문장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접혔다.


회의는 짧았고 말은 많았다.
“일단 이렇게 하자”는 말이 남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적을 것이 없어 여백만 남겼다.

여백은 곧 지워졌다.
바랜 종이 위에서 흔적이 천천히 사라졌다.

나는 틀린 적이 없었지만,
늘 고쳐졌다.

고쳐질수록,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또렷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엇이 내 문장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 건물을 나왔다.
햇빛은 높았고,
그늘은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공원 벤치에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휴대폰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 자세였다.

이 건물과는 다른 시간에 속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사람의 무릎 위에는 작은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다.

흙은 아직 마르지 않았고,
잎은 여름보다 조금 이른 계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잎 위로 빛이 잠깐 내려앉았다가,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 미끄러졌다.


나는 그 화분을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면,
내가 서 있는 계절이 흔들릴 것 같았다.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풍경이
잠깐 겹쳐졌다가 사라졌다.


신호가 바뀌며 시야가 갈라졌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짙은 기척이 잠깐 스쳤다.

그 기척은,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오후에도 메일은 이어졌다.
오전의 말이 다른 문장으로 돌아왔다.

답장을 쓰다 멈추고,
다시 썼다.

보내기 버튼 앞에서 손이 잠깐 떠 있었다.
그 시간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멈춘 손끝에만
얇은 공기가 고여 있었다.


사무실은 하루 종일 밝았다.
나는 재킷을 벗지 않았다.

더위는 밖에 있었고,
안쪽에는 다른 열이 남아 있었다.

보이지 않게,
안에서 천천히 마르는 기척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문장 대신 쌓여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불은 그대로였다.

문서를 저장하고 다시 열었다.
바뀐 것은 없었다.

화면의 빛만
조금씩 눈 안쪽에 남았다.

여름의 밤은 그렇게
희미한 잔상으로 이어졌다.


밖으로 나오자 저녁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짧았고,
걸음은 빨라졌다.

기다리는 사람도,
멈출 이유도 없었다.

아스팔트 위의 공기는
천천히 어두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쁘다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를 낼 일은 없었다.

다만 쓰이는 것들이 계속 있었고,
같은 부분이 매일 조금씩 얇아지고 있었다.

그 얇아짐의 끝에서,
끝내 밤이 되지 못한 빛이 오래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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