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게 피는 쪽으로

by 연월랑

꽃은 늘 같은 방향에서 먼저 피었다.

아파트 단지 안쪽, 바람이 덜 닿는 길이었다.
해마다 시기는 비슷했지만 정확히 같은 날은 아니었고, 조금 빠르기도 했고 어느 해에는 이유 없이 늦어지기도 했다.
그 차이는 늘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았다.

그는 그 길을 알고 있었다.

출근길에는 일부러 그쪽으로 돌지 않았지만, 퇴근길에는 한 번쯤 그 길을 지나갔다.
습관이라고 하기엔 약간 어긋나 있었고, 그렇다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반복되는 일이었다.

꽃이 피어 있는 날에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도착한 장면을 다시 확인하는 일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피지 않은 날을 더 오래 보았다.
가지 끝이 아직 비어 있는지, 아니면 막 올라오려는 기미가 있는지,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어느 날은 아주 이른 저녁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인데도 길에는 사람이 없었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불빛만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그 길 끝에, 누군가 서 있었다.

같은 시간대에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걸음을 조금 늦췄다.

부르면 닿을 거리였다.
목소리를 조금만 올리면, 그 사람은 돌아볼 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그는 부르지 않았다.

지금 부르면, 이 장면이 끝날 것 같았다.

그 사람은 꽃이 피기 전의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 옆을 지나가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그 길에서 누군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날 이후로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머물렀다.

항상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가끔, 정말 가끔씩만 있었다.
그 사람은 늘 꽃이 핀 날에는 보이지 않았고, 아직 피지 않은 날에만 서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어느 날, 꽃이 거의 다 피어 있을 때였다.

가지마다 색이 번져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가벼운 냄새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는 그날 처음으로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멈춰 서서 올려다본 나무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기다리던 시간은 대부분 지나간 뒤였다.

꽃 사이 어딘가에서 낯익은 형체가 보였다.

그는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멈췄다.

그 사람이 고개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들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었고, 꽃잎 몇 장이 떨어졌다.
그 사이로 얼굴이 잠깐 드러났다.

분명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이름을 떠올리려 했지만, 끝내 닿지 않았다.
대신 비슷한 시간, 비슷한 빛, 비어 있던 가지를 올려다보던 날이 먼저 떠올랐다.
그때도 누군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그 생각을 더 이어가지 않았다.

확인하려는 순간, 무언가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상태를 그대로 두었다.

며칠 뒤, 그는 그 길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다.

그 나무 아래에 서 있던 사람이,
이미 떠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 길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꽃이 피는 날에도, 피지 않는 날에도, 같은 장면이 겹쳐 보였다.
서 있는 사람과, 서 있지 않은 자리.

그는 여전히 퇴근길에 그 길을 지난다.

하지만 이제는 꽃보다 먼저,
아무것도 없는 가지 쪽을 본다.

거기에는 대부분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는 그날,
부르지 않았던 쪽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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