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하는 빛

by 연월랑

그는 오래 머물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날 밤은,
조금 더 늦게 도착했다.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믿었다.

밤은 생각보다 빨리 내려왔고,
섬은 금방 조용해졌다.

낮 동안 남아 있던 소리들은 바람보다 먼저 가라앉았고,
바다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얇은 파도만이
느리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물가로 내려갔다.

모래를 밟을 때마다
젖은 결이 발끝에 따라붙었다.

그녀는 그 빛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정확한 설명은 없었지만,
다시 나타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잠깐 멈췄다.

그때였다.

물결이 한 번,
이상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퍼지듯,
빛이 번졌다.

푸르게.

파도가 스칠 때마다
빛이 한 박자 늦게, 물결을 따라 따라왔다.

그녀는 숨을 죽였다.

손을 넣지 않았다.

그저 보고 있었다.

이건,
설명할 수 없는 종류였다.



그를 처음 본 건 낮이었다.

물이 담긴 통이 기울었고,
그녀의 손에서 그대로 미끄러졌다.

물은 바닥으로 빠르게 번졌다.

“아—”

그녀가 손을 뻗기도 전에,
그가 먼저 움직였다.

넘어진 통을 세우고,
흐르는 물을 발로 막았다.

물이 손에 닿았을 때,
생각보다 차가웠다.

“죄송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의 말은 짧았지만,
그 이상 이어질 기색은 없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마주쳤다.

세 번째 만났을 때,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 밤에 바다가 달라요?”

그녀는 잠깐 놀란 듯 그를 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요.”

“어떻게요?”

“그냥… 달라요.”

그는 웃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그런 건 없어요.”

“있어요.”

그녀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착각일 수도 있죠.”

“아니에요.”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게 말했다.

“진짜예요.”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보여줘요.”



그날 밤,
비가 잠깐 내렸다가 멎었다.

공기는 눅눅했고,
파도는 낮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먼저 내려갔다.

빛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잠깐 멈췄다.

올라갈까,
그대로 있을까.

빛은 계속 번지고 있었고,
파도는 느리게 이어졌다.

그녀는 돌아섰다.

이번에는,
조금 더 늦기 전에.

그를 찾으러 올라갔다.

멀리서 불빛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게 그라는 걸 알아봤다.

그녀는 그대로 뛰었다.

부르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았다.

그 순간,

발이 미끄러졌다.

짧게,
몸이 한 번 무너졌다.

파도 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소리가 먼저 닿았다.

짧고,
둔한 소리였다.



눈을 떴을 때,
천장은 낯설지 않았다.

시간이 한 번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 느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옆에 있었다.

의자에 앉아,
조금 구부정한 자세로.

“괜찮아요?”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봤어요.”

그는 잠깐 멈췄다.

“뭘요?”

“그거.”

그는 시선을 피했다.

조금 더 오래.

“없어요, 그런 거.”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봤다.

그는 눈을 들지 않았다.

“봤잖아요.”

이번에는 낮게 말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니에요.”

이번에는 더 짧았다.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아주 늦게.

그 눈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것이었다.



그는 며칠 더 남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녀도 묻지 않았다.

그는 바다를 오래 바라봤다.

한 번은,
파도가 스친 뒤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빛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알고 있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떠났다.



그는 떠났다.

말없이 떠났고,
그녀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녀는 나중에 그를 찾으러 갔다.

같은 길을 걸었고,
같은 시간을 골랐다.

그가 서 있던 자리와
그가 지나던 길을 따라 걸었지만,

그는 없었다.

아주 조금 늦었다.




에필로그

여름이 다 지나간 뒤였다.

그녀는 다시 바다에 갔다.

파도는 낮게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빛이 나타났다.

이전보다 더 또렷했다.

그녀는 이번에도 손을 뻗지 않았다.

그저 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발소리는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때마다,

발끝에서 번진 빛이
아주 조금씩 더 멀어졌다.

“이제는… 보이죠.”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빛이 한 번 더 퍼졌다.

이번에는,

두 사람의 발끝까지 닿았다.

보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었지만

같이 보게 되는 순간은,
늘 조금 늦게 도착했다.

이번에도,

누군가는
먼저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조금 늦게 믿었다.


작가의 이전글덜 찬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