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잇는 또 하나의 출발선
내일은 아이 운동회다.
김밥 재료를 꺼내다 보니
문득 어릴 적 운동회 날의 아침 공기가 떠올랐다.
어릴 적 운동회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시끄러웠다.
아침부터 운동장에는 흙먼지가 일고,
교문 앞에는 부모들이 길게 줄을 섰다.
청군과 백군의 함성이 엇갈려 하늘을 흔들었다.
북소리와 호루라기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아이들은 줄넘기를 하다 넘어지고,
굵은 줄에 매달려 손바닥을 벌겋게 물들였다.
콩주머니가 허공에 흩날릴 때마다 환호가 터졌고,
운동장은 하루 종일 웃음과 먼지로 가득했다.
지금 돌아보면, 운동회는 경기보다
온 마을이 함께 뛰던 잔치에 가까웠다.
그 무렵 나는 부모님께 말했다.
“나 이어달리기 나가.”
신발끈을 다시 묶으며,
그날만큼은 꼭 눈에 띄고 싶었다.
하지만 운동회 날, 부모님은 오시지 못했다.
도시락통 속에는 식은 김밥 몇 줄과
구겨진 쪽지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끝나면 같이 맛있는 거 먹자. 미안하다.”
김밥은 목을 메이게 했고,
쪽지는 눈앞을 뿌옇게 만들었다.
입은 가득했지만, 마음은 비어 있었다.
운동회가 끝나갈 무렵, 이어달리기 순서가 왔다.
출발선에 서서 신발끈을 움켜쥘 때,
눈물이 날 듯 가슴이 저려왔다.
그때 운동장 끝에서 헐떡이며 달려오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늦게 오셨지만, 그날 내겐
가장 먼저 닿은 응원이 되었다.
심장이 요동치듯 바통을 잡자마자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엄마가 본다는 생각 하나에 멈출 수 없었다.
결승선을 끊을 때 귀에 남은 건
함성도, 호루라기도 아닌
엄마의 박수 소리였다.
새벽 공기는 쌀쌀했다.
부엌 불을 켜고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도마 위로 칼끝이 또각또각 울렸다.
김과 밥 냄새가 천천히 퍼졌다.
한 줄, 두 줄 말면서 문득
어릴 적 엄마가 도시락을 싸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이 체육복을 가방에 챙겨 넣고
창밖이 서서히 밝아오기를 기다렸다.
아침 햇살이 번지자
아이와 손을 잡고 학교 정문으로 들어섰다.
요즘 운동회는 예전만큼 크지 않지만,
청군과 백군 응원도 줄었고
경기도 간소해졌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부모들의 눈빛만은 여전했다.
나는 아이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 오래전에 놓쳤던
내 어린 날의 손이 포개지는 걸 느꼈다.
아이의 웃음이 결승선의 테이프처럼
내 앞을 찢고 지나갔다.
운동회의 결승선은 끝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또 하나의 출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