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삼촌

오래도록 지켜 준 이름

by 연월랑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비어 있었다.

저녁마다 집은 고요했고, 대문은 반쯤 열린 채 바람만 스쳐 갔다.


부모는 생계를 위해 먼 도시로, 더 나아가 해외로까지 떠나셨다.

부재가 길어질수록 부모의 얼굴은 희미해졌다.

사진 속 미소를 들여다보며 “이게 아버지고, 이게 어머니지?” 하고

서로 확인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 빈자리를 메운 건 할머니였다.

새벽마다 장독대 옆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안을 덥히고,

논두렁에서 허리를 굽히며 흙냄새를 온몸에 묻히셨다.


손등은 굳은살로 갈라져 있었지만

밥상 위에는 늘 따끈한 국이 놓였다.

마을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학교에 갈 때,

우리는 할머니의 거친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울타리였다.




가끔 삼촌이 찾아왔다.

호주머니에서 꺼낸 엿이나 고무공 같은 사소한 것들을 내밀며 웃었다.

우리는 그 웃음을 믿고 따랐다.


삼촌은 우리 생일이면 작은 선물을 놓치지 않았고,

명절이나 기념일이면 통닭이나 짜장면을 들고 와

집안을 잔칫집처럼 만들었다.


여름이면 계곡에 갔다.

발이 시릴 만큼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금세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더 깊이 가지 마라, 저기 소용돌이 도는 데는 위험하다.”

삼촌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눈빛은 따뜻했다.


물놀이가 끝나면 바위 위에서 수박을 쪼개 주었고,

우리는 껍질까지 긁어먹으며 배를 두드렸다.

그 순간의 달콤함은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다.


겨울이면 마당은 온통 눈으로 덮였다.

우리는 삼촌과 눈사람을 만들고 눈을 굴리며 뛰어다니다가,

해가 기울면 아궁이 앞에 둘러앉았다.


불길이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고구마 껍질을 감싸며 달큼한 냄새를 흘렸다.

삼촌은 쇠집게로 불더미를 젖히더니

검게 그을린 고구마를 꺼내 우리 손에 쥐어 주었다.

손바닥에 닿은 온기가 아리게 퍼졌고,

눈바람에 식은 볼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껍질을 벗기자 김이 났다.

노란 속살이 드러나자, 공기 속에는 따뜻한 단내와 함께

희미한 숯향이 섞여 돌았다.

우리는 호호 불며 한입을 베어 물었다.

입안에 퍼진 단맛과 연기 맛이 섞이자

밖의 찬 공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때 불길이 ‘후우—’ 하고 꺼지며

짧은 숨소리처럼 방안을 스쳤다.

그 순간, 겨울밤은 고요한 축제처럼 느리게 익어갔다.




며칠 뒤, 비가 그친 저녁이었다.

나는 부엌 쪽에서 할머니와 삼촌의 이야기를 엿들은 적이 있다.

할머니가 낮게 말했다.

“그날, 큰비가 쏟아졌지…

아이들 부모가 타고 있던 차가 강둑 아래로 미끄러졌단다.”


삼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불씨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 불빛이 이상할 만큼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삼촌은 더 말이 없어졌다.




내가 열여덟 살 무렵,

동네 길목에서 삼촌이 한 여인과 마주 선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여인의 얼굴은 울먹였고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예요? 당신도 행복할 권리가 있잖아요.”


삼촌은 한참 말없이 서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만해요. 더는 내게 말하지 마요.”


그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여인은 눈물 젖은 목소리로 뒤에서 외쳤다.

“바보야!”

그 말은 오래 남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그저 삼촌의 외로움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나는 그 장면을 멀리서 보았지만

뜻을 다 알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장대비가 쏟아지던 저녁이었다.

시장에 다녀오던 삼촌이 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 말로는, 제동을 잃은 차량이 미끄러져 삼촌을 덮쳤다고 했다.

손에 들린 교과서와 보따리가 빗물 속에서 젖어 흩어졌다고 했다.


나는 그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머릿속에 수없이 그려 보았다.

비에 젖은 책장이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이,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한순간 되살아난다.




며칠 뒤, 병원에 다녀오신 할머니는 얼굴이 더욱 수척해 있었다.

우리를 앞에 앉히고 긴 한숨을 내쉰 뒤 말씀하셨다.


“삼촌은 이제 예전처럼 자주 못 올 거다. 섭섭해도 이해해야 한다.”


그 말은 낯선 무게로 가슴을 짓눌렀다.

입술 끝까지 올라온 질문은 끝내 목구멍에서 막혔다.

그날 밤 빗소리는 유난히 거세게 창문을 두드렸고,

나는 그 소리를 삼촌의 신음처럼 착각하며 눈을 꼭 감았다.


나는 밤새 눈을 감아도 삼촌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다시는 우리 곁에 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 두려움이 어린 마음을 짓눌렀다.




할머니의 고생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새벽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실 때면

불씨보다 먼저 거친 기침이 방안을 울렸다.

장독대 옆에 앉아 숨을 고르는 모습은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 같았다.


그럼에도 밥상 위에는 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는 숟가락을 늦게 드셨고,

앞치마는 늘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은 나중에서야 삼촌 못지않은 또 다른 희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 우리도 각자의 길을 걸었다.

나는 교사가 되었고, 남동생은 군인이 되었으며, 막내 여동생은 대학생이 되었다.

삶은 달라졌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삼촌의 빈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끝자락, 할머니의 숨이 가빠졌다.

작은 병실은 따뜻했지만 바닥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우리는 침대 곁에 둘러앉아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는 한참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시더니

숨을 고르며 낮게 말씀하셨다.

“삼촌은… 네 아버지의 친동생이 아니란다.”


나는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할머니의 손만 더 꼭 쥐었다.


‘삼촌이 남이라니… 그럼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 준 모든 게,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온전한 희생이었단 말인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 순간만큼은 닦을 수도 없었다.


할머니는 다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삼촌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늘 외로웠지.

그때마다 네 아버지가 챙겨줬단다.


한동안 교회에서 돌봄을 받다가

도움의 손길이 끊기자 낡은 단칸방을 얻어 혼자 살았지.

비가 새는 지붕 아래서 허기를 달래며 밥을 먹고,

새 학기가 되어도 교복 한 벌이 없어

늘 교실 맨 뒤에 앉아 있었단다.


그때 네 아버지가 도시락을 나눠주고,

겨울이면 낡은 외투를 건네줬지.

비 오는 날엔 우산이 없어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운 삼촌을 보고,

자기 우산을 내주며 함께 걸어갔단다.

시험 날엔 연필이 없어 망설이는 삼촌에게

자기 연필을 쪼개 나누어주기도 했지.


삼촌은 그때의 따뜻한 손길을 평생 잊지 못했단다.

배고픔보다 더 깊은 건,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 줬다는 그 마음이었단다.”


짧은 기침 뒤,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외지로 떠나던 날… 네 부모님이 그의 손을 붙잡고 부탁했어.

‘내 아이들을 지켜 달라’고.”


그 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할머니의 떨린 손등을 더 꼭 쥐었다.

‘그 침묵이 곧 약속이었구나…

삼촌은 그 약속 하나로 우리 곁을 지켜온 거구나.’




할머니가 떠나신 뒤 우리는 삼촌을 찾기 시작했다.

낡은 수첩을 뒤지고, 옛 이웃들에게 안부를 묻고,

먼 친척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헛걸음 끝에

오래된 지인의 입에서 요양원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곳은 도시 끝자락, 강을 건너 작은 언덕 위에 있었다.

복도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창문 틈새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병실 창가, 휠체어에 앉은 삼촌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내 여동생이 먼저 달려가 “삼촌!” 하고 외쳤다.

천천히 돌아온 눈빛이

우리 얼굴을 하나씩 더듬었다.

그 순간, 오래 묻어둔 그리움이

물결처럼 번져 오는 걸 느꼈다.


나는 울음을 참으며 삼촌의 손등을 잡았다.

손등이 거칠었다. 우리가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고 메마른 피부에서 세월의 무게가 전해졌다.

“삼촌, 이제 우리가 지켜드릴 차례예요.”


삼촌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더니

주름 사이로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말보다 오래 우리의 가슴에 남았다.


창문 틈새로 불어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었다.

그 바람결이 삼촌의 어깨 위에, 우리의 손등 위에 고요히 내려앉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 손길에 담긴 온기가, 말 대신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바람이 불면 우리는 언제나 삼촌을 떠올린다.

지금은 그분의 시간도 고요히 멈춰 있다.


가끔 생각한다.

혈연도 아닌 삼촌이 왜 그토록 우리에게 잘해 주셨을까.


어쩌면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분의 삶 자체가, 우리를 향한 하나의 대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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