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편지 두 장

전해지지 못한 마음이 닿는 순간

by 연월랑

퇴근길, 골목 어귀의 우체통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하루의 끝자락, 눈발이 희미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전봇대 불빛이 번지며, 하얀 입김 사이로 잔잔히 흔들렸다.

나는 가방 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며칠 전, 요양원에서 삼촌의 짐이 도착했다.

작은 상자 하나.

낡은 코트와 수첩, 그리고 이 봉투가 들어 있었다.

봉투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리 작은 선생님에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봉투를 열었다.

편지 두 통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삼촌이 나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또 하나는 아직 쓰이지 않은 내 편지였다.




_“늘 고맙다.

나는 말이 서툴러서, 마음이 자주 늦었다.

그래도 네 웃음 덕에 겨울이 따뜻했다.

이제는 내가 그 웃음을 지켜 줄 차례가 되었구나.”_


짧은 문장들이 비뚤게 이어져 있었다.

글씨마다 힘이 달랐고, 잉크가 번진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 흔들린 선들 사이로, 삼촌의 숨결이 스며 있는 듯했다.


나는 종이를 덮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손끝에 남은 종이의 온기가 천천히 식어갔다.

그러자 문득, 오래전 겨울의 냄새가 떠올랐다.




아궁이 앞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던 밤,

구수한 냄새가 퍼지고, 불길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익어 가던 시간.

삼촌은 늘 말보다 먼저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손을 감싸던 그 온기 속에서,

나는 세상의 모든 추위를 잊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분의 침묵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이제야 그 온도가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눈은 더욱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창밖의 불빛이 희미하게 스쳐 가는 동안,

가방 안의 두 통의 편지가 서로 닿는 듯 미세하게 바스락거렸다.




집에 도착하자, 방 안은 고요했다.

나는 책상 위에 스탠드 불을 켰다.

조용한 빛이 종이 위에 내려앉았다.

삼촌의 편지 옆에 새 종이를 펼쳤다.

그의 글씨가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 시선에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잠시 망설이다가, 펜을 들어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갔다.


_“삼촌, 나도 이제 누군가를 지키며 살게요.

그때 주셨던 온기처럼요.”_


불빛이 잔잔히 흔들리며 종이 위로 번졌다.

두 통의 편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불빛 속에서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삼촌, 잘 들리시죠?”


눈은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방 안의 불빛,

손끝에 남은 종이의 감촉이 하나로 섞였다.


그 순간, 세상은 잠시 멈춘 듯 고요했고

마음속에서는 따뜻한 파문이 천천히 퍼져 나갔다.

그 파문이 내 안의 겨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나는 두 통의 편지를 우체통에 넣지 않았다.

대신 창가에 놓인 액자 옆에 조용히 두었다.

그곳엔 삼촌의 젊은 시절 사진이 있었다.

옅은 미소 속에서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


그날 밤,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창문 너머로 바람이 불어왔다.

커튼이 살짝 흔들리며 종이가 넘어갔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 바람이 편지를 읽는 듯,

종이 위의 글씨가 바스락거리며 낮은 숨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꼭,

“괜찮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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