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감각이 남긴, 조용한 위로
바람이 억새풀 사이를 지나가며
잎 가장자리가 얇게 흔들렸다.
그 떨림은 소리보다 먼저
피부의 겉을 미세하게 건드렸다.
햇빛은 낮아지고,
풀들은 자신들의 속도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잎 하나를 손끝에 올려 보았다.
가볍게 긁히는 느낌 속에서
아주 오래전에 스쳤던 따뜻함이
잠시 되살아났다.
얼굴도 희미해진 기억이었지만
그때의 부드러운 기쁨만은
결처럼 얇게 남아 있었다.
감촉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가 짧게 머물다 사라지는 듯했다.
스친 온도는 오래가지 않았지만
사라지는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감각은 잠시 나를 돌아보고 사라졌다.
그 순간,
마음이 아주 조용히 기울었다.
그 따뜻함은 이제
기억의 표면에만 머문다는 것을.
남겨둬야 할 이유도,
억지로 붙들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그저 지나온 한 시절의 잔여일 뿐이었다.
잠시 고개를 들자
저녁빛이 풀숲 위로 가만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때 억새 하나가
내 어깨를 아주 가볍게 스쳤다.
말없이 건네는 작은 신호 같았다.
잊어도 괜찮다는 듯,
이제는 다 지나가도 된다는 듯한
조용한 손길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돌아보려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람이 이미
내 등을 살짝 떠밀어 주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