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맛이 남기는 마지막 온기
부엌에는 오래 전의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불빛 아래 놓인 냄비에서 김이 천천히 올라오자,
그 사이로 잊힌 숨결이 작은 떨림처럼 번졌다.
그 떨림은 누군가의 하루가 머물던 자리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체온 같았다.
나는 국물을 데우며
사라진 향의 윤곽을 더듬었다.
맛은 혀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피어오던 것이었다는 사실이
그때서야 조용히 스며들었다.
한때 이 부엌에는
식탁을 살피던 눈빛과
음식 위를 지나가던 손목의 리듬이 있었다.
그 작은 습관들이
한 그릇의 온도를 완성하고 있었다는 걸
지금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같은 재료를 썰고
같은 조리법을 따라 했지만
맛은 금세 힘을 잃었다.
짠맛은 있었으나
그 짠맛을 붙들던 마음은 없었고,
향은 익었지만
그 향 너머의 온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김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주 옅은 흔적만 남았다.
그 흔적은 말 대신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맛은 기술이 아니라
삶을 건너온 손끝의 온도다.’
나는 소리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사라진 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비어 있는 중심에서
또 다른 온기가 미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나는 더 이상 맛을 흉내 내려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남긴 방향을 따라
하루의 리듬을 천천히 살아 보기로 했다.
문을 닫던 버릇,
식탁 위를 정성스레 고르던 습관,
말없이 건네던 체온들.
그것들이야말로
진짜 ‘손맛’을 이루던 마음의 결이었다.
오늘, 다시 국을 데웠다.
김이 피어오르며
잠시 오래 전의 온기가 흔들렸다.
그 순간 가슴 한쪽에서
아주 조용한 떨림이 일어났다.
사라진 손맛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 맛이 남긴 온기는
지금도 나를 데우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온기가 또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형태의 맛으로 피어날지도 모른다.
사라진 것은 음식이었고,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의 온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