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나만 바라보듯이

밤이 나에게 건네온 오래된 마음의 흔들림

by 연월랑

밤이 더 깊어지자 창밖으로 달이 천천히 떠올랐다.

구름을 살짝 밀어낸 빛은

마치 오래전부터 날 지켜봐 온 사람처럼

내 쪽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기울어 있었다.


그 빛은 차갑기보다 따뜻했고,

멀어 보이기보다 이상하게 가까웠다.

나는 그 기척을 외면할 수 없어서

고개를 들었다가 잠시 멈춰 섰다.


달은 어둠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쩐지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작은 감정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빛은 벽을 타고 천천히 내려와

책상 모서리를 스치고

내 손등 위에서 고요히 멈추었다.

빛이 닿았을 뿐인데

손끝이 조금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온도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빛 같고, 숨 같고,

어딘가에서 오래 나를 바라보던 마음 한 조각 같았다.


나는 손등 위의 달빛을 바라보며

밤마다 창밖을 비추던 그 흔들림을 떠올렸다.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던 빛,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던 듯한 각도,

문틈 사이로 들어올 때마다

가슴을 살짝 건드리던 미세한 떨림.


그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게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조용히 부르는 방식이었다는 걸

조금 알 것 같았다.




달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아래의 나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쌓이고,

놓친 기쁨들이 뒤에 남고,

슬픔은 말없이 깊어졌다.

그 모든 순간을

달빛은 알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내가 울던 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새벽,

창문 앞에서 숨을 고르던 저녁.

그 시간들의 체온이

달빛 속에 얇게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제야 알아보고 있었다.




창밖은 고요했지만

달빛만 혼자서 천천히 흔들렸다.

그 떨림은

말하지 못한 고백이

밤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나를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조용한 깨달음에 닿았다.

달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달빛 속에 숨어 있던 어떤 마음이

늘 나를 향해 있었다는 것.


사람이었을까.

잊어버린 사랑이었을까.

어디에도 닿지 못한 감정이

다른 얼굴의 빛으로 돌아온 것일까.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 마음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는 사실만은

묘하게 분명했다.




달빛은 여전히 내 손등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몸을 기울여

그 눈길을 조금 더 받아들였다.


밤이 깊어갈수록 달빛은 더 따뜻해지고,

그 부드러움 속에서

내 안에 굳어 있던 마음 하나가

서서히 풀려 내려앉았다.


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안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마음의 고백 같은 기척이 있었다.


‘나는 늘 너를 보고 있었어.

네가 잊은 마음까지도.’


그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빛의 온도로 분명히 느껴졌다.




나는 창문을 닫지 않았다.

달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그 응시가 내 안쪽까지 스며들 수 있도록

조금 더 빛 쪽으로 몸을 내주었다.


그 밤,

달이 나만 바라보던 그 순간

나는 오래 붙들고 있던 감정 하나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어떤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의 빛이 되어

다시 우리를 바라본다는 것을.


그 빛은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잠시 멀어질 뿐,

언제든 다시 떠올라

나를 비추는 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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