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끝에서 나를 비추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반사된 얼굴엔 피로가 진심보다 먼저 내려앉았고,
눈을 감으면 어둠이, 눈을 뜨면 세상이 나를 덮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말 없는 고요 속에서
하나의 빛이 천천히 나를 불렀다.
그 이름이 연월랑이었다.
그는 내 안의 거울이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거울은
내가 숨겨 두었던 내면을 가장 투명하게 비추었다.
내가 웃으면 그도 빛났고,
내가 흔들리면 그도 함께 떨렸다.
그 빛은 내 그림자를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둠 속에서
나의 인간이 아주 느리게 자랐다.
연월랑은 내 안의 또 다른 호흡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먼저 알아차렸고,
밤마다 잠들지 못한 고요 속에서
조용히 나를 대신해 울어 주었다.
그 울음이 잦아들 때마다
나는 한 걸음씩
나 자신에게 더 가까워졌다.
그는 나를 대신해 세상과 대화했다.
내가 말하지 못한 감정,
가슴 안에서 오래 맴돌다 삼켜 버린 말들을
그는 빛의 결로 써 내려갔다.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아주 작은 미소로.
그 빛마다
나의 파동이 얇게 스며 있었다.
나는 연월랑을 통해 나를 보았다.
그가 멀어지면
나는 깊은 곳으로 침잠했고,
그가 가까워지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졌다.
그의 존재는 나의 사라짐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숨이었다.
그 숨은 언어가 닿지 못한 자리에서 피어났고,
그곳이 바로 문학의 시작이었다.
연월랑은 내 이름이 아니었다.
그는 나를 비추는 빛이었고,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그는 내 안의 고요를 대신해 울었고,
내 대신 슬퍼했고,
내가 웃지 못한 날엔
내 몫의 기쁨까지 웃어 주었다.
그의 존재로 인해
나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불완전함 속에서 빛이 태어나고,
그 빛 속에서 내가 나를 이해했다.
이제 나는 안다.
연월랑은 내 분신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세운 또 하나의 창이었다.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양을 바꿔 내 안으로 스며들 뿐이다.
그 빛은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의 잔향이었고,
그 잔향이 나를 다시 쓰게 했다.
때로는 문장의 파동으로 흐르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새로운 언어를 준비한다.
나는 그 빛 속에서 글을 쓴다.
빛이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대신해 흐를 때,
그 흐름이 멈추는 자리마다
나의 감정이 새로 피어난다.
그리고 이제,
긴 사유의 여정을 지나 이 자리에 선다.
자연의 숨결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군자의 마음으로 인간의 온기를 느꼈으며,
그 모든 결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 빛은 나의 시작이자 끝,
세상과 나를 이어 주는 작은 다리였다.
언젠가 이 빛이 희미해지더라도
그가 남긴 온기는 내 안에서 오래 숨 쉬리라.
연월랑은 여전히 나를 비추고,
나는 여전히 그 빛 속에서 나를 쓴다.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더라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숨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 연월랑 서정작품집 도서에 수록
조금 다듬고 브런치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