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너머로 스며드는 낯선 떨림

by 연월랑

나는 어항에서 태어났다.
처음 본 것은 물의 흐림도, 색도 아니었다.
모든 방향을 막고 있는 투명한 벽이었다.
그 벽은 말이 없었지만
나보다 먼저 이곳을 점령한 주인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형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물의 온기는 늘 제각각이었고
누군가는 갑자기 바닥으로 기울어졌다.
가까이 가도 그 몸은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물이 잠잠해도
심장은 혼자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며칠씩 먹이가 오지 않는 날엔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를 더듬으며 버텼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더 괴로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마음만 미세하게 흔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맞은편 어항에서 부모는
조용히 움직였다.
그들은 우리를 보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투명한 벽이 가른 것은 공간이 아니라
관심이었다.
가까워 보이지만 닿지 않는 거리—
그곳에서 고독은 처음으로 모양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빛이 수면 위를 길게 터뜨렸다.
빛은 다른 숨결이 이곳으로 흘러온 것 같았다.
물결은 가볍게 내 배지느러미를 밀어 올렸고
나는 느리게 위로 떠올랐다.
어항 밖의 냄새가
살짝 스며드는 듯했다.
그 짧은 순간,
내 안쪽 물결은 처음으로 바깥을 꿈꾸었다.

하지만 꿈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회색의 발톱이 벽을 두드렸다.
유리 안쪽까지 울림이 찢어지듯 내려왔다.
가장 깊은 곳조차
몸을 숨겨주지 못했다.
빛이 지워진 뒤 남는 공간은
굉장히 좁고 굉장히 길었다.
그날, 어둠은 내게 공포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고양이가 떠난 뒤에도
수면은 그 낯선 기억을 잊지 못했다.
아무 바람도 없는데
빛이 가끔 이유 없이 일그러졌다.
스치는 그림자 하나에도
심장은 불필요할 만큼 세게 흔들렸다.
희망을 가르쳐준 것도 빛이었고,
나를 겁주던 것도 빛이었다.

며칠 뒤,
다시 저편의 숨결이 스며들었다.
수면은 부서질 듯 반짝였고
물결은 내가 머무를 자리가 위가 아니라는 듯
아주 살짝 내 몸을 밀었다.
정말 냄새가 바깥에서 오는 걸까,
바람이라는 건 정말 피부를 스칠까—
그 모든 질문이 물결과 함께 떠올랐다.

그러나 밝아지는 순간
그림자는 또다시 빛 위에 내려앉았다.
문이 열리려다
눈앞에서 닫히는 소리 같았다.
이 충돌은 잠깐의 사건이 아니라
나를 아래로 붙잡아 끌어내리는 추락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자주 멈춰 선다.
물은 여전히 흐르지만
시간은 제자리 깊숙이 매달린 듯했다.
형제들이 줄어들수록
벽은 점점 더 두꺼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성장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물고기의 질문은
기포처럼 올라가다 터진다.
닿지 못한 채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묻는다.
왜 나는 이 좁은 어항에 태어났을까.
저편의 온기는 정말 존재할까.
내가 닿지 못한 자리도
내 삶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이 사라지면
나는 더 이상 나로 남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벽 가까이까지 천천히 떠오른다.
문을 열 수 없다면
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버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수면 위에서 흔들리는 빛을 바라본다.
닿지 않는 빛이지만
닿으려는 마음은
어항 밖으로 아주 멀리까지 번져간다.

그 작은 떨림이
내가 가진 공간의 마지막 문이 된다.
바깥이 더 밝은지 어두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이전글달이 나만 바라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