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날
그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
특별한 약속도,
기다리던 연락도 없었다.
하루는
그냥 하루의 속도로
지나갔다.
아침에
창을 열었고,
바람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바람을
누군가와
나눌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듯
커피를 내렸다.
두 잔이 아닌
한 잔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소리들이
이제는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했다.
그 시절에
우리가
조금 더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러나
곧
그 질문을
접었다.
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이미
도착해 있던 시간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날을
기억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그날이
아무 흔적 없이
지나가게 두었다.
그게
지나간 시간을
가장 조용히
존중하는 방법이라는 걸
늦게 배웠다.
아마도
화양연화는
붙잡는 순간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날에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괜찮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