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끝

by 연월랑

햇볕은 칼날처럼 내리 꽂혔다.
그는 빈 물통을 들고, 바위틈과 어둠 사이를 기어 다녔다.
버려진 우물과 오래된 갱도를 헤집으며, 손끝은 갈라지고 손톱 밑엔 흙이 눌어붙었다.
겨우 맺힌 물방울 하나, 혀끝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물이 사라진 지는 오래였다.
강바닥은 금이 갔고, 빗물을 모으던 장치들은 녹슬어 무용지물이 되었다.
도시는 이미 버려졌고, 남은 사람들은 유목민처럼 흩어져 살았다.
이제 물은 손에 들 수 있는 가장 무거운 것이었다.

며칠째 허탕.
이제는 빈 물통보다 그의 눈이 먼저 말라갔다.
결국, 그는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은 이미 뒤틀려 있었다.
돈은 쓰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곡식, 못, 낡은 철조각을 내놓고 물을 바꿨다.
작은 병 하나가 집 한 채보다 무거웠다.

철문 앞에는 빈 병을 든 사람들이 줄을 섰다.
줄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사람들의 병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아이 하나가 병을 안은 채 바닥에 앉아 있었고,
울음은 이미 끝나 있었다.

누군가 낮게 말했다.
“물이 없는 건 아니지.”

그 말 뒤로
아무도 병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낡은 칼을 내주고 유리병 하나를 받았다.
차가움이 손바닥을 얼려왔다.
아이들의 갈라진 입술과,
부인의 피 섞인 기침이 잠시 스쳤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동쪽 언덕 너머… 옛 저수지에 아직 물이 있다더라.”

몇몇은 비웃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저었다.
“또 그 얘기군.”
“다 말라붙었어.”

노인은 말을 길게 잇지 않았다.
“다녀온 이를 봤네.”

그는 앞으로 나섰다.
“정말입니까.”

노인의 고개가 느리게 끄덕여졌다.



그날 밤, 그는 가족에게 시장에서 들은 말을 전했다.
“저수지로 가야겠어.”

부인은 머리를 저었다.
아이들은 울며 매달렸다.
“아빠… 물 가져올 거지?”

그는 대답 대신 벽에 걸린 액자를 바라보았다.
사진 속엔 햇살이 있었다.
아이들이 저수지 둑 위에서 물장구를 치며 웃고,
부인은 그늘 아래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사진만이
아직 이 집에서 가장 맑은 곳이었다.

그는 사진틀에 묻은 먼지를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이틀 안에 돌아올게.”

아이들의 손길이 붙잡았지만,
그는 그것을 뿌리치고 문을 나섰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사막은 끝없이 이어졌다.
발자국은 모래 위에 새겨졌다가 곧 지워졌다.

딱딱거림이 들려왔다.
모래 틈에서 반투명한 형체들이 몸을 비틀며 기어 나왔다.
검은 액체가 몸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는 외투로 목을 감쌌지만,
한 마리가 발목에 달라붙었다.
칼이 내리그어졌고, 피가 번졌다.
피 냄새에 더 많은 형체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갈라진 입술, 마른 눈동자.

그는 몸을 떼어냈다.
딱딱거림이 한동안 뒤를 따라왔다.

멀리서 울부짖음이 터졌다.
갈비뼈가 바깥으로 드러난 형체였다.
그림자가 모래 위를 스쳤다.

부인의 기침 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 무렵, 마지막 언덕이 나타났다.
길은 오래전에 무너진 교회 뒤로 이어져 있었다.

예배당은 흔적만 남아 있었지만,
녹슨 철탑에 매달린 십자가가
새벽빛 속에서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잠시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곧 시선을 거두고 언덕을 넘었다.

저수지 둑이 눈앞에 드러났다.
마치 결승선처럼 보였다.

그는 남은 힘을 다해 달렸다.
아이들의 웃음과 부인의 기침이
가슴속에서 뒤엉켰다.



그러나 저수지 바닥은 텅 비어 있었다.
금 간 접시처럼 말라붙은 흙 위로,
두개골과 녹슨 양동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손끝이 갈라진 바닥을 긁었다.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병을 꺼냈다.
안에는 아직
조금의 물이 남아 있었다.

마시지 않았다.

사진 속 저수지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웃고,
부인이 손을 흔들던 자리.

그때와 지금 사이를 설명하는 말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붉은 새벽빛이
마른 구름 사이에 잠시 머물렀다.

그 빛 아래서,
병은 끝내 비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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