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간병의 서막
드디어 일반 병실로 옮겼다. 7동 8층 25호.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네 명의 간호사가 붙어 시트를 들어 침대로 옮겼고, 환자복도 새로 갈아입혀 주었다.
몸이 조금씩 들썩일 때마다 남편은 극심한 통증에 안경 너머 눈을 못난이 인형처럼 일그러뜨렸다.
쇄골에 핀을 박는 수술까지 마쳤으니 그 고통이 오죽할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병실은 5인실 창가 자리였다.
탁 트인 뷰를 보니 괜스레 마음이 설렜다.
창밖의 하늘은 속절없이 예뻤고 남편도 그 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힘겹게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창가뷰가 뭐라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카메라 가져올걸."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남편도 내심 아쉬워했다.
사실 챙겨 오고 싶었지만 마음적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아픈 와중에도 빛과 하늘을 탐내는 뼛속까지 사진가였다.
오늘부터 간병인인 나의 임무가 막중해졌다.
씻지 못해 찝찝해하는 머리와 얼굴을 따뜻한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환자는 수시로 앉는 연습을 해야 했고
폐가 쪼그라들거나 폐렴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풍선을 최대한 많이 불어야 했다.
하루 네 번의 호흡기 치료도 내 몫이었다.
할 일이 많아질수록 묘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환자 역시 이 초보 간병인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첫날의 의욕만으로 극복하기엔 통증의 벽이 너무 높았다.
걸어야 회복이 빠르다는데 지금 상태로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남편은 의지를 내어 똑바로 앉아보려 시도했다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밀려오는 통증에 눈두덩이가 붉어졌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난다는 그의 말에 간병인인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병실의 시간은 세상의 시계보다 훨씬 더디게 흘러갔다.
곧 저녁시간이 다가오는지
배꼽시계가 알람을 울렸다.
환자가 입원 후 처음으로 나온 밥은
흰 죽이었다.
반 그릇도 채 먹지 못 하고 숟가락을 놨다.
원래도 죽을 싫어했지만
약이 독해 입맛을 잃은 듯했다.
보호자 식사는 따로 나오지 않아 나는 병원 식당에서 새알 미역국을 먹었다.
첫날 눈물과 함께 먹은 전복죽과는 달리 맛이 좋았다.
혼자 기다리고 있을 환자 생각에 서둘렀다.
이제 시작이다.
한편으로는 간호병동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곁에 있어줄 수 있어서 좋았고
환자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돌봐주기를 원했을 테니까..
8층 창가의 하늘을 공유하며 우리는 함께 긴 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