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성장

은정이에게

by 서연우

2차선 도로 너머의 공주님 : 나의 첫 베프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건너편으로 작고 귀여운 친구가 전학을 왔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그 아이에겐 인상 선한 두 살 터울 오빠가 있었다. 연년생 남동생과 매일 투닥거리던 나에게 다정한 오빠를 가진 친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사 온 지 이틀째 되던 날, 집 앞 고무 대야에 가득 담긴 물로 장난을 치며 햇살처럼 웃던 남매의 모습은 시골 소녀였던 내게 낯선 충격이자 동경이었다.

​도시에서 온 그 아이에게 말을 걸기까지 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가 마치 국경처럼 멀게 느껴졌지만 결국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까만 피부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친구는 누가 봐도 사랑스러웠다.

선생님들도 그 아이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 아이를 닮고 싶었고, 그녀처럼 된다면 나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생의 첫 베프였다.

엄마 같은 존재였던 이모가 시집을 가면서 내 마음에 극심한 우울과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도 그 구멍을 메워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

고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고 그녀가 좋아하던 박남정의 춤도 따라 췄다. 그 시절 유명했던 외국 소설 "다락방의 꽃들"을 함께 읽으며 죽은 막내의 운명에 같이 눈물도 흘렸다.

취향이 비슷했던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됐고 사춘기라는 거친 바다를 건너게 해 준 유일한 벗이었다

​그녀의 엄마가 아침마다 예쁜 머리를 묶어주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일찍이 자립했던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스스로 머리를 묶고 학교에 갔다.

잘난 남동생의 그늘에 가려 사랑받을 짓을 못 한다고 자책하던 나에게 잘하는 게 많다고 격려해 준 사람도 이모가 시집가던 날 화장실에서 몰래 울던 그 외로운 소녀를 지켜준 사람도 다름 아닌 그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며 우리의 삶은 서서히 각자의 길을 갔다.

내가 대학을 중퇴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소식마저도 뜸해졌지만 가끔 들려오는 소식만으로도 마음이 아련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일찍 가정을 꾸렸다.

스물여섯, 지금 생각하면 참 이른 나이에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 전, 그녀는 목숨이 오가는 큰 사고를 겪기도 했다.

6개월간 생사의 기로를 오가며 버텨낸 그녀는 그 시절의 단단함으로 시련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 곁을 지켜준 남편의 깊은 사랑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학창 시절의 그 사랑스러운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눈부신 배경이었는지,
그 시절 우리가 얼마나 예뻤는지 말이다.

나의 학창 시절을 가장 환하게 빛내주었던 은정이. 오늘따라 너의 그 갈색 눈동자가 그립다

수줍어하는 은정이, 그리고 앞니 빠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