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코로나19와 타지생활이 집밥을 애틋하게 만들었다

by Yeony Do

끼니를 함께하다

식구.
1.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2. 한 조직에 속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식구의 정의)

예전엔 끼니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여 나타내는가, 그 이유가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그러나 런던과 뉴욕이라는 먼 타지에서 혼자 살아 보게 되고서야 그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한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늘의 메뉴는 무엇일까, 같이 수저와 반찬을 놓으며 식사를 준비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 그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운 나날들이 있었다.


런던에서 한국을 오던 전날 엄마는 ‘내일 입국하고 뭐 제일 먼저 먹고 싶어? 뭐 먹으러 갈까? 아니면, 할머니 모시고 내일 장 보러 가게.’라고 물으셨다. 비싸고 거창한 음식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은 할머니가 끓여주신 감자찌개였다. ‘할머니 표 감자찌개’라며 답을 하는 순간 그 맛보다 가족들과 도란도란 그 음식을 먹던 순간들이 마구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상황들이 그리웠던 것이다.

할머니가 우리 식구를 위해 끓여주신 어마어마한 양의 찌개


부모님이 런던으로 방문하셨을 때, 캐리어 하나에 가득 싸 와 주신 반찬들도 생각이 난다. 엄마가 반찬을 하나하나 진공 포장하고 심지어 몇 가지에는 예쁜 리본까지 달아주셨다. 그중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누룽지에 얽힌 사연으로 아직도 가족들이 나를 놀리곤 한다.


내가 밥을 해 먹는 것조차 귀찮아할 것을 알았던 할머니는 누룽지를 잔뜩 싸주셨다. 나는 할머니가 직접 밥을 얇게 펴고, 프라이팬에서 눌어붙을 때까지 불 앞을 지켜가며 만들어주신 누룽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룽지는 시중에서 파는 누룽지와 다르게 수분 기를 머금고 있기에 꼭 냉동 보관하여야 한다는 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나는 누룽지를 찬장에 실온 보관을 해두었고, 삼일일 후 누룽지를 끓여 먹을 생각에 들뜬 내가 포장을 열었을 때 나는 누룽지에서 피어나고 있은 곰팡이들을 마주했다. 그 곰팡이들을 보자마자 할머니가 여름에 부엌에서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누룽지를 누르던 모습이 떠올랐고, 나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슨 누룽지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울었냐’며 웃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보다 서러운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부모님이 런던에 방문하실때 챙겨와 주신 반찬들


타지에서 혼자 보내던 시절엔 늘 친구들 혹은 동료들이랑 외부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오지 않으면, 집에선 혼자 무언가를 먹는 것을 최대한 미루다 대충 끼니를 때우곤 했다. 밀려있는 과제와 업무, 도저히 집에서 무언가를 오랜 시간을 들여 해먹을 엄두가 안 났던 것 같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식구’들이 챙겨주던 식사 시간이 얼마나 값진 시간인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 또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로 지내게 될지 모르니, 가족들과 북적북적 함께하는 요즘을 최대한 기억해두려 노력하고 있다.



집밥과 우리 할머니

내가 입국하고 코로나 19가 시작되자, 식당 운영 시간에도 제한이 생기고 사람이 모이는 마트나 백화점의 외출 또한 자제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모두가 집밥을 많이 먹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 가족 또한 그러했다. 해외에 오가던 구성원들이 집에서 오래 머물게 되고, 재택근무를 하고 온라인 수업을 듣게 되자, 모두가 집에서 마주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게 되었다. 우리 집의 경우에는 원래도 식사를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았지만, 코로나 19 발병 이후 더 많은 시간을 식탁에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보내고 있다.


우리 집의 ‘집밥’은 대체로 다양한 종류의 반찬들과 함께 차려진다. 외할머니, 친할머니 두 분 모두 늘 반찬을 잔뜩 만들어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연희는 견과류를 못 먹고, 지희는 호박이 들어가면 싫어하고.’ 그 모든 사소한 취향들까지도 세심하게 챙긴 반찬과 요리들을 잔뜩 보내주신다.

할머니 표 반찬들로 가득 찬 식탁

또한,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방문하시는 날들이면, 할머니 표 스페셜 요리들이 잔뜩 준비된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기 전에 티비를 보시고 무엇을 해줄지 미리 고민하신다고 한다. 시장에서 좋은 재료가 보이거나 제철인 음식이 있다면 그 또한 무조건 준비해 오셔야 마음이 편하시단다. 우리는 항상 할머니 힘드시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시면 가급적 사서 먹자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해도, 할머니는 매 순간 우리에게 뭘 해줘야 우리가 맛있게 잘 먹을까만 고민하신다.


아래는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들의 사진들이다. 해외를 자주 오가면서부터 할머니가 해준 음식들은 꼭 사진을 찍어 남겨둔다. 그 정성과 사랑이 말로 다 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사실 그 사진들을 타지에서 열어보게 되면 곧바로 눈물 스위치가 되곤 했다.)

할머니 표 스페셜 요리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할머니와의 순간들

1. 이거 한입 먼저 먹어봐 봐

내가 방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쓱 들여다보시다가, 한 손에 막 비벼낸 고소한 냄새를 가득 풍기는 나물을 들고 들어오신다. ‘연희야. 이것 좀 먹어봐 봐. 할머니가 너 좋아하는 나물 무쳤다? 엄청 맛있어.’ 나는 할머니가 입에 넣어주시는 나물을 한입 가득 물고 맛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할머니가 한마디를 덧붙이신다.


‘원래 이렇게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거야. 나중에 할머니가 이렇게 한입 두입 먹여주던 게 정말 맛있었는데. 하고 생각난다니까?’

양푼에 쓱쓱 버무린 나물과 도토리 묵 무침


2. 수미네 반찬가게 좀 틀어볼래?

내가 맥북을 들고 거실로 나와 할머니 옆에 앉으면, ‘혹시 김수미가 하는 수미네 반찬 재방송도 볼 수 있니? 큰 화면으로 등갈비 냉이 고추장찌개 만드는 것 좀 다시 봐보자. 레시피 따라 우리도 해 먹어 보자.’라고 물어보신다. 그러면, 나는 유튜브에 ‘김수미 냉이 고추장찌개’을 검색해서 할머니와 함께 보기 시작한다. 할머니 옆에 딱 붙어 앉아 함께 노트북 화면을 보며 수다를 떠는 그 순간은 참 따뜻하다.

할머니와 함께 보는 수미네 반찬 그리고 그 완성작


3. 연희는 호박 식혜, 지희는 그냥 식혜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꼭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 할머니가 그간 해두신 반찬들과 요리들을 차곡차곡 포장하는 것이다. 할머니 힘들게 또 뭘 이렇게 많이 했냐고 걱정 섞인 말을 던지면, 할머니는 ‘할머니도 이제 힘들어서 양은 많이 못 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솥을 두 개 들고 나오신다. 놀란 우리는 쪼르르 뛰어가서 ‘많이 못한다며! 아유 힘들게!’라고 화를 내곤 한다.


그럼 할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신다. ‘이건 호박식혜 엄마랑 네꺼’, ‘이건 호박 안 먹는 지희 꺼 그냥 식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할머니 표 호박식혜와 강정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 그만큼 가족들과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도 사진첩을 열어보고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전 세계로 여행을 다니고 친구들과 만나던 시절들을 그리워했지만,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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