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복장으로 익숙한 곳에서 일할 수 있고, 쉬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 등. 정해진 오피스에서 일하는 것보다 집에서 일할 때 취할 수 있는 장점들이 참 많다. 그리고 이전에도 말했듯 나에겐 어느 정도 잘 맞는 업무 방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요즘은 집에서 일을 하며 부모님과 동생과의 시간들을 기록하기 위한 요즘 쌓여가는 사진들을 보며 쏠쏠하게 재미를 느끼고 있다.️ (사진과 글들을 보고 엄마도 굉장히 재밌어하신다.)
그렇지만 집에서 일하는 데 단점이 있다면, 일과 일상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영국과 시차를 맞추어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나는, 한국의 오전과 낮 시간에는 한국에서 필요한 업무들을 저녁과 밤 시간에는 영국 시차에 맞춘 회의 및 업무들을 하곤 한다.
그렇다 보니 자주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을 놓치고 24시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가 되곤 한다. 가끔은 밥을 먹다가도 회의나 급한 업무처리를 위해 숟가락을 내려놓고 방으로 뛰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제 가족들도 나의 그런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가끔 걱정 섞인 말들을 하시기도 한다.
누구든 집에서 일을 해야 한다면 일상과 일의 그 경계를 잘 찾는 것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 같다.
내가 기획하고 진행하는 행사와 사업에 주되게 녹이고자 하는 가치는 ‘지속가능성’이다. 우리가 말하는 지속가능성이 환경, 교육, 전통문화, 예술과 예술 생태계와 같이 범지구적으로 지속되어야 할 가치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구성원으로의 ‘우리’, ‘나’라는 개인이 지속 가능하도록 잘 돌보아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런 내용을 꺼내고 있는 나 또한 나 자신을 잘 알아봐 주고 돌봐주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러하다.’라고 답할 수 있는 자신이 없다. 개인적인 욕심에 컴퓨터를 앞에 두고 밤을 새우고 식사를 거르거나 미루는 일은 당연해지는 날들이 허다하고, 밤낮은 어느 나라의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바뀌어 병이 나기도 했다. 분명히 나를 챙기는 시간에 대한 절실함은 꽤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나의 일상과 업무와 ‘마음 챙김’, ‘쉼’의 시간이 균형을 이루게 만드는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학창 시절부터 내가 지내게 될 다음날의 일정들을 10분 단위까지도 쪼개서 적어놓곤 했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잠들기 전에 미리 다음날의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두기 위한 훈련을 굉장히 많이 했던 듯하다. 한국의 입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시간들을 통제하는 방법을 습관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습관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누군가의 구체적인 지시 없이 내가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들의 계획을 세우고 기획에 필요한 절차와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들을 운영하는 형태의 업무를 가능하게 했다. 어릴 때처럼 나의 시간들 중 10분, 5분까지도 계획돼야 한다는 강박은 버렸지만, 요즘도 잠들기 전 시간대별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적어두고 잔다.
나 같은 경우에는 먼저 포스트잇에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나열한 후, 다음날의 미팅 및 확정된 일정의 전후로 예상 소요 시간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일정표를 작성한다.
그렇게 세워진 계획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확신하지만, 확실히 나를 존중하고 배려한 계획은 아니었다. 매시간 빡빡하게 채워진 업무들, 리서치 및 자기 계발 시간, 그 와중에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들도 생산적이길 바랐다.
현재까지 일을 해보니 행사와 사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선 당연하게 통제가 불가능한 변수들이 생겨난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상황 해결을 위한 융통성과 반응속도가 부족한 편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그러한 지점에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발견한다. 그 상황들에 화가 나는 것이라기보다, 돌발적인 변수로 인해 내가 세운 계획 중 일부가 지켜지지 않고 미뤄진다면, 그에 대한 죄책감과 찜찜함은 하루의 기분을 망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미리 세워둔 계획들이 스트레스를 줄지언정 재택근무를 하는 자유로운 형태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꼭 시간관리를 위한 자기만의 스케쥴링 방법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그 스케줄 속에서도 내가 나를 돌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은 틈틈이 꼭 배치할 수 있도록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업무에 치이는 나날들을 보내게 되면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챙기는 시간들부터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한해 두 해가 지나다 보면, 어떤 순간에 ‘진정하게 잘 쉬었다.’라고 느껴지는지, ‘나는 어떤 형태의 쉼을 좋아하는지’ 조차도 모르게 된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러던 중, 나와 여러 활동을 함께하고 있는 장비치 작가님을 통해 유보라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올해 ‘라이프 컬러링, 나의 일주일과 대화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일상을 색칠하며 돌아보는 툴 키트를 개발하기까지 유보라 작가님의 여정과, 그 툴 키트를 활용하여 어떻게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 나눈 책 또한 발간되었다. 그 책에서 작가님은 나는 어떤 일주일을 살았으며, 내 시간들은 어떻게 구성되어있고, 그 시간들을 예쁜 컬러들로 그려냄으로 그 시간을 맞이하던 나의 감정들은 어떠했는지, 자신에게 다정하게 물어주는 쉽고도 따뜻한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유보라 작가님은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이름을 들으면 알 법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인물들의 일과가 다양한 색으로 정리된 차트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들의 시간들 중에는 창작활동이 아닌 일상적인 일, 여가, 운동에 할애된 시간들도 다수 포함되어있다. 유보라 작가님은 아티스트들의 일상에 대한 컬러링 차트를 보고 그들의 일상에 대해 알아가던 중 그들도 우리와 같이 집중이 어려운 날들이 있었으며, 게으르게 보냈던 나날들도 있었고, 자신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날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집중이 어렵고 목표했던 모든 것들을 이루지 못하는 ‘게으른’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임에도, ‘내가 왜 그랬는지, 나의 마음은 어떤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준 적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게으르고 부족한 자신을 자기 합리화를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함으로 자신도 몰랐던 감정과 행동들의 원인을 찾고, 더 나은 나날들을 위한 힌트를 얻어가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듬뿍 와 닿았다.
이 책에서 작가님이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라서 나의 일과들을 채색해보고 돌아보면서 나를 발견해 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휴식은 무엇인지, 내가 실천하지 못하고 미루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깨달았다.
나에게 온전한 쉼이라 여겨지는 순간들은
가족, 친구들과의 대화와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연대, 햇빛이 가득한 날의 산책,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여행,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창작 등이 있다.
내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쉼들을 틈틈이 배치해 줄 필요가 있구나.
이 브런치 글들을 쓰는 시간 또한, 내가 좋아하는 ‘쉼의 시간’들 중 하나의 순간이다. 이 글을 읽어주고 계신 분들도, 내 주변의 내가 아끼는 많은 사람도 자신들이 진정 원하는 쉼을 일상에 배치하면서 자신들을 더욱 탄탄하게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