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터전이자 힐링공간, 작업실이자 스픽이지 바, 모임 공간, 갤러리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는 것은 아니다. 행사와 사업의 기획과 제작 일을 하는 만큼, 답사를 다녀야 할 곳들도 많고 작년 한 해는 대규모 행사를 위해 많은 시간을 제주에서 보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친구들을 덕분에 내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공간, 쉬어갈 수 있는 공간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진행할 수 없어지자, 나의 친구들은 나와 우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에게 하나둘 자신들의 공간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 공간들에는 그 공간 주인들의 취향과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각각의 공간들에서 친구들과 보낸 사진들을 SNS에 업로드하면, 지인들조차도 궁금해하는 공간들이라 몇 곳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작년부터 나는 ‘사부작 사부작’이라는 예술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사부작 사부작은 문화예술활동에 뜻을 두고 다양한 장르에서 각각 고유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공동체이다. 올해는 양평의 용천 3리 마을을 알아가고 예술이 움틀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그 뿌리를 마을의 하심지라는 공간에 두고 있다. 그곳은 나와 함께 사부작 사부작 공동체의 기획과 형성을 시작한 이경아 영상감독의 공간이다.
‘일과 끝없는 창작에 치어 지친 청년예술인들, 소속감과 연대가 필요한 창작자들이 만나 서로 의지하고 쉬어가면서 사부작사부작 창작을 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근데 그 터전이 자연과 가까운 곳이면 너무 좋겠네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경아 영상감독은 그런 나의 한마디에 흔쾌히 부모님과 주말마다 가꿔온 자신의 공간에서 만나는 것은 어떻냐며 제안해주었다. 그렇게 그곳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 공동체의 뿌리가 되었다.
하심지에 들어서면 넓게 펼쳐진 밀밭이 보인다. 그 뒤로는 산자락들과 넓은 하늘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경아 감독과 가족분들이 정성을 다해 가꿔둔 텃밭에는 철마다 오이, 토마토, 파, 상추, 고추 등 다양한 유기농 농작물들이 자라난다. 그 옆에는 모종 하나하나가 자라날 모습을 상상하며 계절마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꽃들의 꽃씨를 뿌려두는 꽃밭도 있다. 봄에는 튤립, 히아신스, 진달래, 벚꽃 등이 피어오르고 늦여름, 초가을에는 코스모스가 밀밭의 앞부터 화단까지 이어져 피는 정말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곳에서 사부작사부작은 서로를 알아가고, 천연염색, 사운드 아카이빙, 꽃으로 그림 그리기, 자신을 돌아보는 워크숍 등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했다. 그 사이 시간들에 유기농 야채들을 직접 채집해 밥을 지어먹고, 테이블을 꽃들로 꾸미고 밤새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꼭 사부작사부작 공동체의 활동이 있는 날이 아니어도, ‘연희님 일하다 힘들어서 자연에서의 치유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요.’라고 이야기해주는 경아님 덕에 나는 종종 들러 자연을 앞에 두고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오곤 했다.
특히, 경아님의 어머님께서 직접 블랜딩 해주신 한방차는, 이제 ‘차 tea’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 한방차를 마시던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좋았다. 하심지의 작고 따스한 오두막에 들어서면 어머님께서 직접 손질하고 말려두신 수십여 가지의 한방약재와 꽃들이 놓여있다. 어머님께서는 하나하나의 효능을 설명해주시며 블랜딩 한 차를 끓여주셨다. 향과 맛은 물론이고 차가 끓으며 그 안에 들어 있는 자연의 재료들이 티팟 안에서 순환하는 모습까지도 ‘힐링’ 그 자체로 다가왔다.
어느 누가 그렇게 한 가족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 수 있을까? 나에겐 작년부터 올해까지 코로나 19와 일로 인한 수많은 변수와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게 해 준 정말 고마운 공간이다.
‘아 나 진짜 놀러 나가고 싶다. 밤새 술 마시고 신나게 돌아다니던 그때가 좋았다.’ 청춘이라면 요즘 상당히 자주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와 내 친구들도 그러하다. 그래서 나의 멋진 친구 주혜림 디자이너는 자신의 공간을 크리에이터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작업실이자,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스픽이지 바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주혜림 디자이너가 자신의 공간을 그렇게 활용해온 것은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부터이다. 집 안의 특정 공간을 크리에이터들의 작업실로 내어주어, 낮에는 그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또한 평일 저녁에는 주혜림 디자이너와 내가 함께하고 있는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이어나가는 프로젝트 팀이 정기적으로 회의를 나눌 수 있는 미팅 및 워크숍 진행 장소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종종 그 공간이 ‘스픽이지 바’가 된다는 것이다. 스픽이지 바란, 1920-3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에 생긴 무허가 주점을 일컫는 단어에서 유래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고 아는 사람들만 찾아갈 수 있는 은밀한 가게를 뜻한다. 따라서, 간판도 없고 출입구도 숨겨져 있는 바이다. 그 콘셉트를 이어받아 지인들이 그들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Oxpeakeasy’라는 이름의 바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래서 주혜림 디자이너를 옥스바 사장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장님. 저희 다음 주에는 회의 말고 옥스바 예약해도 되나요?’라고 물으면, 주혜림 디자이너는 그날그날 자신이 준비해줄 수 있는 메뉴들을 카톡으로 보내준다. 그리고 와인과 다양한 칵테일들도 준비해준다, 사실 그녀는 디자이너이지만, 술이 좋아 바텐더 자격증까지 따버린 정말 멋진 여성이다. 혜림이가 만들어준 칵테일, 음식들 그리고 옥스바에 묻어나는 혜림이의 취향과 분위기까지.
솔직히, 나와 나의 친구들은 모두 혜림이의 옥스바에 진심이다. 유재희 AR 크리에이터는 옥스바의 특성상 아는 사람만 위치를 안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아, 옥스바의 로고가 그려진 휴지를 인식하면 그 위로 건물들이 솟아오르고 옥스바로 추정되는 건물에 표시가 되는 AR 필터를 만들어 주었다.
사장님 마음대로 열고 사장님을 알아야 예약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집에서부터 실현해보는 멋진 사람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 이곳에 소개해본다.
오늘 회의 어디서 할까? 내 작업실로 와도 좋아.
코로나 19가 심해지자 예술공동체와 프로젝트를 위한 모임과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현재는 5인 이상 집합을 하는 것조차 금지가 되었지만, 코로나 19가 시작된 직후부터도 우리에게는 구성원들만 모여 시간을 보낼 공간이 필요했다.
그때마다 요즘 나와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며 내가 많이 의지하고 있는 장비치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이자 오픈 스튜디오에서 만나는 것이 어떻냐며 선뜻 공간을 공유해주었다. 작년 한 해 동안 그 공간에선 장비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기도 하였고, 나와 나의 친구이자 동료들은 그곳에 모여 소소한 이벤트와 파티 그리고 행사의 뒤풀이를 즐기곤 했다.
같은 빌딩의 모든 상점의 영업시간이 끝나면 공간이라 자유롭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장비치 작가는 종종 구성원들이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보드게임을 준비해주기도 한다. 작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에는 옹기종기 바닥에 모여 앉아 야식을 시켜 놓고 그곳에서 수다를 떨었던 장면도 포함된다.
요즘은 사부작 사부작 공동체의 기획 회의를 위하여 자주 방문한다. 요리조리 이동이 가능한 테이블 위에 그간 리서치하고 준비해온 자료들을 다 흩어놓고 서로의 이야기들 듣기 시작한다. 그러다 가끔은 생각난 음악을 틀어 듣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창작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생각을 바로바로 행하여 볼 수 있는 신기한 공간이다.
현재 새로운 모습으로의 변화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장비치 작가는 그 공간에 더 다양한 문화예술인과 문화 애호가들이 모여 이채로운 파급 효과들이 피어날 수 있으면 한다고 했다. 앞으로 변화될 공간의 모습과 그곳에서 일어날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다채로운 활동들이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