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봄을 굉장히 좋아한다. 봄을 알리는 꽃들은 더 말할 나위 없고, 따뜻해진 햇볕과 봄비가 내리고 나면 파릇파릇 솟아오르는 새순들이 너무 좋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가벼운 재킷 하나를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한없이 걸어 다닌다. 듣고 싶은 노래들을 골라 이어폰을 꽂고 걷다 보면, 평소 같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거리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은 기획안을 작성하다 보면 엉덩이를 아예 의자에서 떼지 못하는 날들도 있기에, 일부러라도 동네 산책이라도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온종일 집에서 일하다 바라본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이 맑은 날이면, 책상에만 앉아있어야 하는 나의 하루가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오랜 시간 방에 박혀 작은 모니터 안에 모든 것을 쏟아낸 후에는 머리를 환기해줄 필요가 있다. 겨울에는 방에서 밖으로 나와, 강아지를 끌어안고 엄마와 수다를 떨곤 했다. 엄마도 내가 나오길 기다렸다 준비해주시는 간식과 차 한 잔이면 다시 집중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다르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날씨는 얼마나 좋은지 직접 걸어 다니며 확인하고 싶다.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는 시간도 아깝다. 최대한 빠르게 하던 업무를 마무리하고 핸드폰과 지갑만 들고 뛰쳐나간다. 엄마와 우리 집 강아지 도리를 꼬셔 함께 산책을 나기기도 한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걷기 시작한다. 길가마다 가득 피어난 꽃들을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진다. 낮에 산책을 나가면 봄꽃과 나무에 햇빛이 닿아 눈으로 다채로운 색감들이 들어온다. 봄에만 볼 수 있는 색깔들이다. 영국에서 색채 심리학 전문가에게 각각의 사람이 내뿜는 색채의 톤에 대하여 배운 적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봄 웜, 여름 쿨’ 이런 펄스널 컬러들이 사실은 사람의 외형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심리에도 작용하여 사람의 성격도 그 컬러들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당시에 그 영국인 색채심리학자는 여러 테스트를 진행하더니 나에게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색채는 겨울 쿨톤이지만, 내적으로 봄 웜톤에 끌려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겨울의 톤들을 입었을 때 외적으론 나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지만, 개인적으로 자연이 만들어낸 봄의 색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낮에 일정들 사이의 틈을 찾지 못하여 해가 진 후 산책하러 나가기도 하는데 이 또한 굉장히 매력적이다. 가로등 불빛들에 슬쩍 반사되어 보이는, 푸르고 까만 하들 아래로 몽글몽글 피어난 목련과 벚꽃들. 그리고 날이 따뜻해지자 예술의 전당과 같은 문화 복합 공간에서는 야외 시설들을 활용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생사를 진행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각자 일정 거리를 두고 개인의 시간을 즐기기엔 충분하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들른 예술의 전당의 한가람미술관 앞 스테이지와 잔디에서는 언택트 라이브 교향악 공연을 보여주고 있었다. 커피 한잔을 들고 잔디에 앉아 한참을 공연을 보았고 그 장면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했다. 여유롭게 잔디에 앉아 무언가를 즐겼던 순간들을 모두가 그리워하였는지 많은 친구와 지인들이 여기는 어디냐며 답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하루를 새로 시작하듯 상쾌함이 느껴진다.
집에서 근무하지 않고 외부에 일정이 있는 날에는, 미리 동선을 확인하고 그 근처에 걸어볼 수 있는 곳들을 찾곤 한다.
어제는 오후에 시청 근처에서 공모사업 관련 면접이 있었다. 면접을 보기 전 점심에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작가님과 만나 점심을 먹고 인터뷰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차근차근 내용을 확인하고 면접을 끝내고 나니 오후 3시 반경이 되었고, 한남동에 오후 6시 미팅을 가기 전까지 여유 시간을 두 시간 정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곳곳이 봄꽃으로 꾸며진 시청 근처를 걷다 덕수궁으로 향했다. 불긋불긋 봄이 찾아와 수줍어하듯 덕수궁의 곳곳에는 벚꽃들이 피어있었다. 꽃을 보며 한참을 걷고 카메라에 꽃을 담았다. 그 후 시립미술관에 들러 전시를 감상하고 근처에서 차를 한잔하고 있다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나의 평생 동반자인 맥북을 들고 걷다 보니 어깨가 점차 무거워지긴 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덕수궁을 걸으며 ‘엄마와도 함께 와서 꽃과 사진도 찍어드리고, 전시도 다시 보아야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작가님의 말에 마음이 더 훈훈해졌다. 바쁜 일정 중에 마주하게 되는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한 주를 그리고 그다음 주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더라.
다음 주도 캘린더에 일정이 가득한 한주이지만, 나도 가족들과 봄을 즐길 시간을 마련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