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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책방 Dec 01. 2023

요리 좀 못하면 어때?

나보다 장점많은 엄마 있나요~

옆 동에 사는 친한 언니가 커피 한잔 하자며 불렀다. 마침 집에 있던 마틸다와 함께 언니네로 향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부지런하고 똑소리 나는 그녀는 얼굴도 예쁘다. 예쁜 사람이 요리까지 잘하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왜 10년 차 주부인 나에게는 요리 능력을 주시지 않은 걸까.(예쁜 얼굴이라도 주시던가) 백종원아저씨의 맛깔난 레시피도 내 손안에 들어오면 무용지물이다. 사탕수수로 감칠맛을 낸 미원도 고향의 맛 다시다도 내 손맛을 이기진 못했다.

"여보, 우리 마틸다는 나중에 커서 친정엄마가 차려준 밥 먹고 싶다는 소리는 안 하겠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쌉쌀한 커피 향과 달곰한 핫케이크의 냄새가 주인보다 먼저 반겼다. 정갈하게 놓인 접시 위에는 초코핫케이크, 생크림핫케이크, 딸기핫케이크, 플레인핫케이크가 놓여있었다. 뭐부터 먹을지 제비 뽑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엄마~ 이거 진짜 맛있다. 집에서도 만들어줘~"

입이 짧고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랑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언니에게 핫케이크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매번 동그란 계란프라이를 시도하다가 스크램블을 만들어버리는 요리똥손에게는 가루에 물을 넣어 부치기만 하면 되는 핫케이크도 자신이 없다.

"집에 사각 프라이팬 있어? 동그란 모양이 어려우면 사각으로 해~ 계란말이 할 때도 쓸만해."



사랑이가 하교하기 전, 로켓을 타고 온 프라이팬이 도착했다.


[핫케이크 레시피]

핫케이크 가루 200g

우유 200g

달걀 1개

버터 약간


쉽다.



쉽지 않았다.

"엄마 맛있는 냄새난다~ 핫케이크 했어?"

냄새를 맡고 다가오는 딸에게 차마 보여줄 수 없는 핫케이크의 비주얼이었다.

"엄마, 핫케이크가루가 불량인가 봐." 




주부라면 응당 집밥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특히 워킹맘이 아닌 전업주부는 삼시세끼 손수 차린 집 밥을 먹여야 책임을 다한 느낌이 든다. 주부 10년 차에 이제 제법 맛을 내는 요리도 몇 가지 있다. 미역국과 김치찌개. 사람이 두 가지 음식으로 연명할 수는 없으니 동네 반찬가게에서 탄단지에 맞게 골고루 반찬을 시켜 먹는다. 아직도 반찬이 배달 올 때면 남편과 딸의 눈치가 보인다. 제 할 일 못한다는 기분에 죄책감이 들던 어느 날, 사랑이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나도 모르는 나의 장점을 열두 가지나 써온 예쁜 마틸다.

"엄마도 요리 잘해~ 엄마가 끓인 미역국 제일 맛있어. 엄마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야."

요리를 못하는 엄마와 아내를 만난 가족에게 미안함이 남아있긴 하지만, 마틸다의 한마디에 주부로서의 책임을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사라지고 진짜 좋은 엄마라도 된 듯 마음이 꽉 찬 하루다. 그 날의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와 제멋대로 생겨버린 핫케이크의 추억은 아직도 나에게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추억을 만들어주는 나의 딸. 사랑하고 또 사랑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양쪽에서 태양을 느끼는 것이다.

-데이비드 비스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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