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자동차로 시작점부터 은퇴지점까지 이동하며 예기치 못한 인생의 모험을 하는 게임이다. 이게 현실이라면 난 시작점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운전이 두려워 5년 전 겨우 취득한 운전면허증은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스파이처럼 화장대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은둔 중이다. 운전이 해결돼도 문제다. [스카이다이빙을 배우세요!]라는 액션카드를 뽑아버렸다. 어릴 땐 에버랜드에 있는 독수리요새정도는 탔었는데, 아이를 낳고 먹이사슬의 최하위층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그네도 못 타는데 스카이다이빙이라.. 그 다음카드는 더 놀랍다.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세요!] 라니, 경력단절 10년 차에 남아 있는 자존감과 자신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나보다 잘나고 멋진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내가 되겠어?'라는 안일하고 게으른 생각으로 도전과 성장이 멈춘 지 오래다.
게임 속에서는 졸다가 직장에서 해고도 당하고, 법정소송에도 휘말렸다. 온라인사업을 시작했고 학교까지 설립한 나는 크루즈여행과 스카이다이빙까지 두루 섭렵하고 크진 않아도 아늑해 보이는 해변가 오두막에서 은퇴를 맞이한다. 재밌자고 시작한 게임인데 내 인생이 이대로 괜찮은지 고민됐다. 본래는 배우고 알아가는 걸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직접 해보길 좋아한다. 물론 끈기가 없어서 문제지만 말이다. 살면서 이런 본성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그 이유나 시기가 궁금하진 않았다. 그저 올해는 좀 다르게 살고 싶다.
새로운 걸 배워볼까. 자격증을 취득해 볼까. 운동을 시작할까. 일을 다시 해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는데 나를 가로막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자신감과 자존감이다. 모래 알갱이처럼 흩어져 버린 그것들에게 다시 물을 주고 조물조물 만져주면 황금빛 모래성처럼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도 다시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유튜브 핑계고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내가 나를 칭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을 땐 시력이 2.0이다가 내 장점을 찾으려니 돋보기를 잃어버린 노인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연말 술자리에서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넌 말을 너무 예쁘게 해. 그것도 능력이야~ 아이들 가르치거나 상담일 하면 잘할 거 같아."
"나 일하러 갈 때 네 생각 자주 해. 정말 실력 안되는 선생님들 볼 때마다 여니가 와서 하면 훨씬 잘할 텐데라는 생각 들어"
"아냐!! 내가 무슨. 나 진짜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아냐 아냐."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을 한 건지. 이 정도면 칭찬 알레르기가 확실하다.
"여보, 나 좀 칭찬해 봐.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장점이 없어."
장난으로 한 마디 던졌다. 냉정하고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남편의 대답은 안 봐도 뻔했는데,
"너무 많지. 여보는 하면 다 잘할 텐데. 그걸 너만 모르지."
슬기로운 초등생활 다이어리
새해가 되면 으레 계획하는 [책 백권 읽기. 운동하기. 살 빼기]대신 하루에 한 번 나를 칭찬하기라는 계획을 세웠다. 안하던 짓을 하려니 몸에 두드러기가 나듯 간지럽고 어색하다. 글쓰기 중에서 가장 어려운 건 칭찬글쓰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10살인 내 딸이 쓴 듯 서툰 칭찬 한마디지만 앞으로 얼마나 근사한 칭찬이 나올지 기대된다.
"너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야. 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고, 너 자신을 많이 사랑해 주렴."
아이에게 자주 해주던 이 말을 이제 나에게 해주고 싶다.
인생게임의 승자는 모두 은퇴했을 때, 가장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의 인생게임에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이 승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