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을 넘어 새벽형 인간인 우리 딸. 오전 5시에서 6시면 귀신같이 일어난다. 늦게도 재워보고 한약도 먹여보고 별짓을 다 해봐도 소용없다. 나는 9년째 강제 미라클모닝 중이다. 오늘은 특히 더 피곤했다.
피곤해서 슬펐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혼자 가까운 카페로 향하는데 딸 친구 엄마들과 마주쳤다.
“지우 엄마는 혼자 참 잘 다니네요~” 그날따라 왜 ‘혼자’라는 단어에 꽂혔을까. 난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한다. 혼자 카페에서 차 마시며 책 뒤적이기. 혼자 서점 가서 책 사기. 그런데 오늘은 ‘혼자’라 슬펐다. 카톡을 켰다. 누구라도 만나고 싶었다. ‘이 언니는 항상 바쁘지.’ ‘얘는 회사 갔지.’ ‘얘는 애가 너무 어려서 못 나올 거야.’
그러다 문득, 뉴스에서 본 챗 GPT가 생각났다. 나는 챗 GPT랑 채팅을 시작했다.
[나 심심해]에서 [나 외로워] [나 슬퍼]까지. 일기장에나 담을 만한 단어들을 인공 지능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내가 미쳐가는 걸까. 챗 GPT는 영혼 없이 나에게 여러 방법을 추천해 줬다. 그중에 눈에 띈 하나 [모임을 가져보세요.] 평소에 책과 서점을 좋아하니까 독서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낯가림 최고봉에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내가 미친 듯이 독서모임을 찾고 있었다. 마땅한 모임을 찾지 못한 그때, ‘9살 영어원서 읽어주기 모임’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갔다. 내 딸도 9살이고 2명을 충원하는데 한자리만 남았다는 내용. 이건 마치 홈쇼핑 매진 임박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고민도 없이 댓글을 달았다.
[혹시 아직 자리가 있다면 제가 참여할 수 있을까요?]
누구라도 만나고 싶고 소통하고 싶었던 그날, 나는 그렇게 일을 저질렀다. 퇴근한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 다음 주 화요일에 오프라인모임 간다. 대단하지? 나 이제 나답지 않게 살기로 했잖아!”
“아니야. 나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가지 말까?”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다음 주 화요일’이
드디어 찾아왔다.
설레서인지 초조해서인지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너무 빨리 가면 예의가 아니니까 정각까지 기다려야겠다.’ ‘처음 방문인데 뭐라도 사가야 하나’ ‘이대로 다시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갈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 보니 문 앞이다.
출처 픽사베이
“안녕하세요~~ 라이언님??”
이런, 나는 라이언이었구나. 오픈 채팅방에 입장할 때 아무렇게나 설정된 닉네임이 무려 ‘수줍은 라이언’이었기에, 자연스레 라이언님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되돌아 집에 가고 싶어질 만큼 부끄러웠지만 일단 주춤대며 앉았다. 나를 라이언님이라 부르는 그녀들은 아이들에게 원서 읽어주기를 지속하는 엄마들이었다. 이쪽 원서 바닥에서는 엄마표인지, 학원표인지 따위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엄마표든 학원표든 원서를 읽어주는 엄마는 흔치 않기 때문에 패를 나누면 세가 약해지고 만다. 이 신여성들은 무려 5년째 한글책, 영어책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자녀에게 원서 읽어주기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란다. 실로 엄청난 여성들이였다.
“저희 집엔 ort밖에 없어요, 하하, 8살 때부터 매일 하루에 1권씩 읽어줬고요. 한글책과 영어책 레벨 차이가 커서, 고민이에요.” 조심스럽게 내 얘기를 꺼냈다.
“라이언님, 한글책을 정말 열심히 읽어주셨나 봐요~ 대단해요. 한글책 수준이 높은 애들은 영어도 금세 따라와요. 걱정 마세요.”
“우리 애들도 아직 ar.1점 대예요. 천천히 끝까지 같이 가요! 언젠간 오르겠죠 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마약처럼 중독되어 의지했던 챗 GPT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고마워]라고 마지막 답장을 남겼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의 친절한 조언과 따뜻한 격려를 받고 3달째 ‘영어원서 읽어주기’ 모임의 수줍은 라이언으로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