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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Nov 02. 2023

에코백이 어울리는 여자

미니멀라이프는 핑계고

"홍지야 너도 이거 사. 잘 어울리겠다."


3년째 알고 지내는 언니동생들과 만났다. 서로 웬만한 속얘기는 다 하는 대나무숲 같은 언니동생들이다.

백화점에 오면 쇼핑은 기본이니까, 그녀들은 백화점 로고가 찍힌 종이백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나만 빼고.

나는 손에 든 핸드폰으로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이번 달 생활비가 겨우 10만 원 남짓 남아있었다. (게다가 남편카드라 더욱 쓸 수 없었다.)

"홍지는 진짜 옷 사는 걸 못 봤네~ 오늘도 안 사?"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난 후라 그랬는지, 평범한 언니의 물음에 당황했다.

"나 요새 미니멀리스트 책 보잖아. 미니멀리스트가 돼 보려고"


미니멀리스트, 미니멀라이프 그런 거에 관심도 없고 뭔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갑자기 미니멀리스트가 돼버렸다.


남편은 더없이 성실한 사람이지만, 외벌이에 아이를 키우는 건 성실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예민하고 작은 내 딸을 하루종일 기관에 맡기고 일을 하러 갈 만큼 나는 용감하지 못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우린 점점 가난해졌다. 누구나 있는 대출금, 아이 교육비, 공과금. 비슷하게 사는데  자꾸 나만 가난해지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 쓰고 모으면 되는 이 심플한 법칙이, 우리 집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안 써도 모을 게 없으니,


남편에게 오늘 일을 말하며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완벽한 T형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왜 있는 척을 해? 돈 없어서 못 산다고 말하면 되지."


처음엔 남편의 말에 화가 났다. 공감이라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인간.

"여자들은 그런 게 있어. 남자들처럼 단순하지가 않다고. 난 있는 척한 게 아니라,,"

순간,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한 것과 남편이 말한 있는 척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주눅 들고 싶지 않아서, 가난을 숨기고 싶어서, 창피해서, 나는 있는 척하려고 [미니멀리스트]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된 거구나 싶었다. 아주 아주 아주 가끔이지만 완벽한 T형 남자는 맞는 말을 하곤 한다. 오늘이 그랬다.


명품백 얘기에 아는 척하는 것이 피곤했다. 사실 호캉스에 관심도 없고 하고 싶었던 적도 없다. 아는 척 관심 있는 척했지만 우리 가족에게 맞는 펜션으로 놀러 가는 게 행복했고, 서점에서 책 한 권 사들고 나오는 게 행복한 사람인데, 난 없어 보이기는 싫었나 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서글픔은 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쓴 가면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가난하든 부자든 관심 없다. 오직 나만 신경 쓸 뿐이다.


출저 픽사베이


가난한 나와 가난하지 않은 나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솔직하지 못해 핑계를 대는 나는. 내가 아니다.


오늘도 새 명품백을 들고 나온 그녀들,

이젠 내 에코백에 핑계를 댈 필요가 없다. 난 내 삶에서 소중한 것이 따로 있고, 그건 명품백은 아니었다.

그녀들의 명품백 사이, 좋아하는 책 한 권이 들어있는 나의 에코백이 오늘은 퍽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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