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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Jan 08. 2019

을지로가 없어진대요

2019년 1월 8일, 을지로 3가 관수교 사거리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청계천-을지로를 제조산업문화특구로 만들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요즘 을지로는 가장 핫플레이스가 아니었던가. 여기서 기자회견을 벌여야 할 만큼 큰일이 있는 걸까. 찬바람이 살을 에는 날이었지만, 가려던 전시를 포기하고 을지로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철거될 뻔하던 세운상가가 메이커스 시티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면서 이곳에 선순환적인 도시재생이 일어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저기가 헐리고 부수어져 있었다. 도시재생을 빙자한 철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곧 아파트가 들어올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상인들은 또다시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몰렸고, 불법 철거의 공포 아래에서 삶을 짓밟힘 당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용역 깡패', '불법 철거'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어감이 너무 셌고,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왜 용역 뒤에는 '깡패'라는 말이 붙는지 실감할 수밖에 없다. 밤낮으로 주민들을 신체적/정신적으로 위협하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렇게 삶의 벼랑 끝까지 내몰아버리는 것. 개발과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고 있는 행동들이었다. 


도심 산업을 외곽으로 이전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된 적은 없었다. 을지로의 산업을 통째로 들어 옮기려던 장지동 가든파이브가 한때 텅텅 비어 있던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을지로의 산업들은 모두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를 해체한다면, 그곳에서 행해지던 모든 산업도 결국 함몰될 것이다. 


한국적인 것을 살리자면서 옛 모습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켜가고 있는 을지로를 결딴내려 하는 서울시도시재생산업을 이해할 수 없다. 익선동처럼 겉보기에 한옥만 번지르르하면 되는 건가. 그 안에 있는 주민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곳에는 이제 허울만이 남았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2년 전,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울시 서대문구의 옥바라지 골목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옥바라지 골목은 도시 재개발 사업을 거쳤고 현재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멋진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모습들이 반복되는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자회견이 열리는 그 자리에 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발언에 박수를 치는 것뿐이었다. 


아마 이 겨울이 지나고 나면, 을지로 상인들의 생계는 막막해질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도시 기억은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종국에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지쳐버릴 것이다. 



2년 전에 썼던 옥바라지 골목에 관한 글을 여기서 잠깐 공유한다. 사실 도시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저 개인의 시각에서 쓴 것이라 이런저런 반론이나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미 사라져 버린 옥바라지 골목이, 을지로가 사라지지 않도록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약간은 두렵고 무서운 마음으로 이곳에 남긴다. 


옥바라지 골목으로 본 도시 역사와 재개발의 문제 

2017년 2월 2일. 옥바라지 골목 문화역사 연구단의 3차 포럼이 <옥바라지 골목으로 본 도시 역사와 재개발의 문제>라는 이름으로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진행됐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러나 생각 외로 적은 사람이 극장에 모이는 것을 보며 나는 재개발이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재개발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나는 묘한 기시감이 든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는 이상 끊임없이 듣게 되는 단어이지만, 그 영향 아래 직접 놓인 적은 아직 없다. 재개발이란 주거환경이 낙후된 지역에 도로·상하수도 등의 기반시설을 새로 정비하고 주택을 신축함으로써 주거환경 및 도시경관을 재정비하는 사업을 이른다. 도시 공동화 현상과 이로 인한 도심부 쇠퇴 현상은 에너지·자원의 낭비, 교통의 혼잡, 공해, 구시가지 기반시설의 노후화 및 상업 기능의 쇠퇴 등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였고 이를 해결하고자 재개발과 재건축 등의 도시 정비사업이 이루어져 왔다.


매일같이 서대문 독립공원 앞을 지나던 때가 있었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린 서대문 독립공원 맞은편에는 언젠가 빨간 글씨로 쓰인 현수막이 펄럭였다. 재개발을 결사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필사적인 각오가 입혀진 빨갛고 굵은 글씨와는 달리 주변은 고요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듯이. 그래서 정말로 그곳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줄로 알았다.


옥바라지 골목

‘옥바라지 골목’은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45, 6번지 일대를 가리킨다. 과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자들의 가족 및 지인들이 이곳에 잠깐 기거하며 옥살이하는 이를 뒷바라지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더불어 이곳은 ‘무악 2구역’이라는 재개발구역으로 유명하다. 1997년 당시 ‘무악 1구역’이었던 무악동 46번지 일부가 무악현대아파트로 재개발된 이후, 옥바라지 골목의 나머지 구역들도 재개발이 필요한 낙후지역 리스트에 꾸준히 올랐다. 결국, 2014년에 해당 구역들에 대한 재개발 시공사가 선정되었고, 2015년 7월에는 관리처분인가가 고시되었다.


근대 감옥의 형태를 가진 서대문형무소는 항일 운동을 범죄시한 일제가 독립투사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만들었던 근대 통치수단이다. 이곳 서대문형무소에는 감옥 물품을 자변으로 조달해야 하는 미결수가 많았는데, ‘옥바라지’라는 것도 사실상 이 원칙 때문에 허용됐다. 옥바라지는 수감자와 그들 가족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면서 수감자에게는 자신의 항거가 결코 범죄가 아님을 다시금 확인하는 원동력이 돼 주었다. 그러면서 무악동에는 형무소 주변으로 점차 독특한 곳들이 생겨났는데, 가령 수감자에게 사식을 제공하는 가게나 면회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주는 대서소, 수감자의 지인이 묵는 작은 여관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이런 장면은 옥바라지골목으로서의 장소성을 무악동에 부여해주었지만, 현재 옥바라지 골목은 철거되어 그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주민들도 모두 이주를 마친 상태다.


폭력성의 문제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의 지점 중 하나는 ‘폭력성’이다. 우리는 재개발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지만, 그 정확한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보상금을 받은 주민들이 새로운 주거지로 이주하는 단계에서 종종 불공정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흐릿하게 인식할 뿐이다. 그러나 재개발을 직접 겪었던 사람에게 들은 실상은 과연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인지 의심이 들 만큼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이었다. 


재개발 사업 주체가 원하는 시한에 맞추어 주민들을 내보내는 임무를 맡은 철거반은 재개발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불안감과 불쾌감을 조성한다. 악의적인 소음 발생이나 노상방뇨로 악취 만들기 같은 일은 약과다. 불법적으로 CCTV를 설치해 주민을 감시하는가 하면 물리적으로 위협을 가하기까지, 이들 철거반이 보이는 비인간적인 모습은 비일비재하다. 주민 대부분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동네를 떠난다. 크레인을 동원해 강제 철거를 진행하려는 철거반의 악의적 행동과 그들을 침묵으로 조종하는 재개발 사업 주체의 모습은 어쩌면 옥바라지골목만의 특수한 모습이 아니라, 재개발 지정 구역에 남은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모습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이 맞닥뜨리는 일상적인 공포와 불안, 울부짖음은 정부와 언론, 그리고 대중의 관심 밖이다.


물론 낙후된 도시 경관과 인프라는 개선되어야 하고, 도시 정비사업도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성만은 인정하기 어렵다. 정부가 계속해서 재개발 지역 주민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두 손 놓고 방관한다면, 그 폭력적인 행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도시 역사와 재개발의 문제 

서울의 여관은 독립운동사에 있어 중요한 장소다. 1930년대, 여관은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활동을 준비하는 장소이자 독립운동 사상을 전파하는 공간이었다. 당시 통감부의 <숙옥영취제규칙>으로 인해 신변을 제대로 기록할 수 없던 독립운동가가 여관에서 머물기란 어려운 일이었음을 볼 때, 아마도 여관 객주와 독립운동가 혹은 독립운동단체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이 추측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옥바라지 골목에 위치했던 ‘구본장 여관’ 역시 형무소에서 출소한 독립운동가들에게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철거는 이에 대한 추가 조사 없이 강행되었다. 이로써 원형을 보존하고 있던 구본장 여관마저 헐리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구본장 여관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여전히 옥바라지 골목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다. 어디서부터가 옥바라지 골목의 경계인지, 정말로 구본장 여관이 독립운동가의 활동 기지로 사용되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래서 더더욱 철거 진행 전에 철저한 조사가 진행되었어야 했다. 시간이 쌓아 올린 역사와 흔적은 한 번 사라지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0년, ‘2020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안’이 발표되었다, 2005년 기본계획이 재정비된 이 계획안은 앞으로의 재개발 추진 방식을 두고 더 이상 무분별한 재개발이 아닌 지역의 역사, 문화적 장소성을 살리면서 낡은 환경만 개선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서울시는 해당 계획안을 통해 피맛골처럼 기존의 도로망이나 산업 용도 지역을 유지하면서 공동 개발하는 ‘소단위 맞춤형 방식’도 새로 개발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 후, 옥바라지 골목은 세간의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한 채 헐리고 말았다. 자신이 가진 이야기를 충분히 내뱉어보기도 전에 재개발의 빠른 속도에 밀려 사라진 옥바라지 골목은 이제 복구할 수 없고, 단지 옥바라지 골목 문화역사 연구단이 발굴한 내용만이 남아 전해질 것이다. 역사와 문화를 살리는 재개발을 하겠다는 토대는 마련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종로나 충무로 등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는 원도심 지역은 비교적 보존의 손길이 닿는 한편, 배제된 사각지대나 공통의 기억에서 지워진 존재를 말해주는 자료와 현장은 옥바라지 골목처럼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완연한 봄이 오면, 우리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재개발 현장들이 서울 곳곳에서 기지개를 켤 것이다. 그 현장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철거민의 울분과 그 지역의 이야기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노력은 또다시 무너지고 짓밟힐지 모른다.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사람들의 관심에서 배제된 채로 말이다. 어떤가, 과연 우리는 방관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참고문헌

전영욱(2016), 식민지기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 도시연구, (16), pp.105~106

김세용(2008), 도시재생; 현황과 문제, 건축,  52(7), 대한건축학회, p.14

<옥바라지 골목으로 본 도시역사와 재개발의 문제> 3차 포럼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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