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홍대입구역

연남동을 가려면 홍대입구역에서 내려야 하거든요.

by 수아

가끔 퇴근길에 홍대입구역으로 오면, 자괴감이 든다. 내가 이렇게 꾸역꾸역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조금 비낀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저녁 7시의 홍대입구역은 아수라에 가깝다. 지하철을 내리려는 사람과 타려는 사람이 뒤엉킨다. 아직 열차 내부에서 사람이 다 나오지 않았는데 기다리던 사람들이 열차에 타기 시작하면 귀 옆에서 나직이 목소리가 꽂힌다. 차마 글로는 담기 어려운 심한 말이.


열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면 30초 안에 좁은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긴 (사람) 웅덩이가 생긴다. 잠깐 우물쭈물하는 새에 그 인파에 갇혔다. 사람들은 나란히 발맞추어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걷는다. 가끔, 이탈자가 발생한다. 흐름에 역행해 빠져나가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소리 내어 그를 비난하지는 않지만,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빛과 옆사람에게만 들릴락말락하는 작은 목소리는 이미 단죄를 시작했다.


가끔은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작은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내려야 한다는 필사적인 마음에 인파 속을 헤쳐 나가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표정과 몸짓으로 잔뜩 표출하며, 다가오는 어깨를 굳이 피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나. 이 모든 상황을 피하지 않기 위해, 나는 조금 돌아가고 밀리더라도 버스를 타는 편이다.


내가 연남동을 떠난다면 홍대입구역을 거쳐야 하는 게 싫어서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버스로 출퇴근하지만, 지하철을 더 많이 타야 하는 날이 온다면 정말로 연남동을 떠날 각오까지 (사실은) 하고 있다. 사람이 많은 것도 싫지만, 그보다도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자꾸만 선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 세상엔 자주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그런데 가끔, 그게 바로 나라는 걸 깨닫고 흠칫 놀란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앞서 가던 사람이 우뚝 선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나는 하마터면 그(녀)와 부딪힐 뻔한다. 가까스로 피해 지나가지만 속으로는 이미 할 수 있는 심한 말은 다 한 상태다.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가라앉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몰려온다. '아까 왜 그랬지?' 가던 길이 잘못된 것 같아 다시 지도를 보려던 것뿐일 수도 있는데. 아니면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홍대입구역에서 마주치는, 자주 화나 있는 사람들은 나의 모습인 셈이다.

작은 것에 분개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고, 그 모서리 진 말들을 기어코 뱉어내고야 마는.


최근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듣고, 폭력적이지 않은 삶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순간적으로 '화내지 말아야지'라고 억누르는 생각이 마음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져다주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같이 이미 잔뜩 지쳐버린 날엔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래서 이 복작복작하고 생동감이 넘쳐흘러버리는 서울에 계속 사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되지만서도. 언젠가는 홍대입구역을 좋아하지는 못해도 미워하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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