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링링이 서울을 강타할 거라던 날 하루 전, 이사를 마쳤다. 힙스터 체크리스트의 첫 항목이 '서울시 마포구에 산다'로 시작하던데, 서대문구와 마포구 사이의 경계에서 끝없이 떠돌던 생활을 드디어 청산하면서 의도치 않았던 힙스터 취급도 이제 안녕이 된 셈이다.
서울에 올라온 지는 10년에 가까워 오지만, 집을 얻어 생활한 건 연남동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기숙사, 학사, 셰어하우스 등을 전전했고 적게는 2명, 많게는 6명까지 함께 사는 공동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익숙했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모두 각양각색인 지라 나의 룸메이트들은 짧은 생활 속에서도 인상적인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남겼고 그 이야기들을 엮는다면 <아무튼, 서울살이>라는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봤다. 곧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지만.
처음으로 집다운 집을 얻은 연남동은 썩 마음에 들었다. 역에서는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 곳이었지만, 번화가에서 적당히 멀고 적당히 가까웠다. 소음에는 영향받지 않으면서도, 누가 '연남동인데 나올래?'라고 하면 주저 없이 달려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 2년을 꽉 채워 살면서 평생을 가져가고 싶은 기억들을 많이 만들었고, 앞으로도 나에게 연남동은 '연트럴 파크'보다는 그 끝자락에 있는, 아무도 잘 모르는 동네로 남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말 그 시간들을.
하지만 연남동을 누빌 때는 누비느라 바빠서, 누비지 못할 때는 생업에 바빠서 그러질 못했다. 그 동네에 살기도 전부터 매일 드나들던 주점 '이영이'부터 시작해서, 이영이 앞 작업실에서 살며 사람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던 고양이 요다와 쪼다, 월드컵(인가 올림픽) 결승전을 보다가 거나하게 취해버린 5분 거리의 포차, 이상한 파란 체크 잠옷 바지를 입고 휘적휘적 걸어가 커피를 사 오던 'CCB', 그리고 조금 많이 멀지만 자정 넘어 나오라는 연락을 받을 때면 신나게 달려가던 빠레뜨까지. 사실 연남동은 하나도 모르지만 우리 집 주변만큼은 주변 사람들과 같이 가고 싶은 장소들로 넘쳤다.
이사 오기 전, 자주 가던 가게 사장님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내가 뭐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런 마음을 토로하자, 친구는 "이웃인데, 인사해야지"라는 말을 무심하게 건넸다. 무심해서, 더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말이었다. 결국 다녀오진 못했지만, 2년 동안 길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해주시던 소점 사장님. 덕분에 조금 어둡던 저의 귀갓길이 꽤 든든했어요.
어느 날부턴가, 주말 저녁이 되면 놀러 온 듯한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면서 '여길 떠나야 할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했던 듯하다. 1억도 안 되던 전셋집은 2년 사이에 보증금 4000에 월세 50을 받는 비싼 집이 되었다. 그간 동네에 3~4개뿐이던 가게는 10개 가까이 됐고, 동네의 풍광도 서서히 바뀌었다. 나에게도 선택지가 많이 생겨 좋았지만, 그만큼 매일이 낯설기도 했다.
3년 전과, 2년 전과, 지금이 확연히 다른 것처럼 1년만 지나도 그 동네는 또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거다. 그리고 나면 나는 그곳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겠지. 그때가 되어도 홍대입구역부터 우리 집이었던 그곳까지 걸어가는 동안 코끝에 스치던 여름 내음을, 눈이 소복하게 쌓인 장면을, 그 길을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과의 추억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