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이마로 초대한 장본인이자 자신의 집 한켠을 선뜻 내어주며 하우스메이트를 시켜준 아람. 아람을 처음 만난 건 2년 전 겨울이었다.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온 아람이 나는 퍽 좋았는데, 야림의 주선(?)으로 한 번 만났을 때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며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람이 회사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우리 팀은 모두 군산으로 2박 3일 출장을 떠났고, 회사 동료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금세 우리는 친해졌다. 아람이 들어오고 내가 회사를 떠나는 4개월 간, 동고동락하며 참 많은 일을 했다. 당시 내 마음은 참 피폐하여 힘들었는데 이들과 함께여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24시간 나를 내리누르는 우울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퇴사하던 날, 야림이 열어준 송별 파티에서 다솜이 준 꽃다발과 아람이 준 편지의 한 구절이 아직도 생각난다. 우리 이제 동료 아니고 친구라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되뇌고, 팀을 떠나는 게 못내 아쉬워 편지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함께 회사를 다니는 동안 아람은 유학을 준비했는데, 종내는 합격증을 따 내는 걸 보며 다시 한번 그녀의 성실함에 감탄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그녀의 끈기와 성실함을 사랑한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당시 회사일과 유학 준비를 함께 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이마르에 떠나기 전까지 없는 시간을 쪼개어 우리를 몇 번이나 만나주었고, 가끔 한국에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우리에게 연락을 주었다. 비행기 타고 12시간, 그리고 기차 타고 다시 3시간을 들어와야 하는 바이마르와 서울에서 아람과 나는, 그리고 다솜과 야림은 고민을 나누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부작대며 만들었다. 그렇게 1년 반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관계는 느슨하지만 꽤나 튼튼한 실처럼 이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럽 여행을 간다면 크로아티아나 핀란드, 에스토니아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베를린의 장벽이나 이런 것들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첫 유럽 여행지로 독일을 선택한 건 아람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그녀와, 한 달간을 하우스메이트로 지낸다는 건 정말이지 특별한 경험이 될 거란 자신이 있었다.
바이마에 도착한 지 4일째,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말도 없이 5시간을 내리 앉아 각자의 일을 했고, 후루룩 짐을 싸서 베를린으로 오는 플릭스 버스(Flix Bus)를 탔고, 오는 4시간 동안 둘 다 활자 노동에 시달렸다. 버스를 내리자마자 멀미를 호소하며 한식을 먹으러 갔고 다시 숙소를 갔고 재즈바를 다녀왔다. 우리는 오늘 함께 외쳤다. "우린 잘 될 거야."
이 모든 게 아람과 함께여서 좋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르겠다. 함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함께이기 때문에 같은 상황도 좀 덜 힘들고 그저 좋게 느껴진다. 부디 내가 바이마에 있는 시간이 아람에게도 그렇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아람, 우린 잘 될 거야. 크고 작은 하루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