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브이로그 속 삶을
동경했는데 말이야.
사실 나도 조금만 부지런해지면
그렇게 살 수 있더라고."
이곳에 와서 3일 만에, 일종의 루틴이란 게 생겼다. 일단 시차 적응은 영영 실패할 기세인데 자꾸만 4시 30분~5시 사이에 깬다. 그런데 또 시간이 가는 게 야속해서 일단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세수하고, 아침 음료를 만들고, 노트북을 켜고 앉아 <크고 작은 하루>를 쓰고. 아람이 일어나면 함께 아침을 만들어 먹으면서 일한다.
12시 즈음이 되면 둘 다 기진맥진해진 상황. 점심을 만들어 먹는 것으로 마음을 치유한다. 때로 손을 쓰는 노동이 적절히 섞여 있을 때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오후 일정을 계획한다. 보통 일화목은 직장에 매여 있는 시간. 그렇지 않은 날은 낮에 놀고 저녁에 일하기로 다짐한다.
조금 부지런을 떨어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갔다. 아람의 눈에는 벌써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여행자의 시선은 이토록 낯설고 새롭다. 건물에 칠해진 페인트, 집 주소를 알려주는 숫자, 하다 못해 길가의 나무까지. 한 걸음 떼고 사진 찍고, 또 한 걸음 내딛고 사진을 찍느라 우리의 여정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중고품 숍에 들러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물건의 기쁨을 주는 것들을 사고, 굳이 조금 더 걸어 아람이 한 번도 가로질러보지 않은 공원을 함께 건너고, Koriat라는 카페에 들러 케이크를 먹고. 카페 내부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햇살을 조금 더 받고 싶어 바깥 자리를 택했는데, 건너편의 성당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모두 조금씩은 귀찮은 일.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화면 너머로 동경하던 삶이 나의 것이 된다.
다시 장을 보고 저녁을 먹으러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이 상황이 낯설어졌다. "우리가 한국에 있었어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돌아오는 건 우문현답. "이런 삶이 뭔데요?" 그러게, '이런' 삶이 뭐였을까. 대낮에 여유를 만끽하며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삶일까, 아니면 일과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식재료를 사고 그걸로 저녁을 해 먹는 삶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무엇에도 마음이 쫓기지 않는 삶이었을까.
어쩌면 지금은, 여행자와 거주자 사이의 경계에서 원하던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찾고 실험해 보는 좋은 기화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25일이라는, 짧고 긴 기간 동안 약간의 귀찮음을 귀찮아하지 않으며 살아보자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