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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Jan 27. 2020

그 이야기가 계속 듣고 싶어요

세 번째 사람 비하인드: 동료로만 남기는 아쉬운 관계 

이번에는 여담으로 시작해보면, 지금 다니는 회사는 세 번째로 취직한 곳이다. 첫 번째 회사는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워낙 자유로운 분위기다 보니 서로서로 친구가 됐다. 그래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동료 이상으로서의 관계에 힘써야 하는 일이 힘에 부칠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종종 만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들과 동료 이상의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때는 그랬다는 뜻이다.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가서는 부러 딱딱하게 굴었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했지만, 첫 번째 회사를 교훈 삼아 '일터에서는 일만 하자'는 생각이 좀 더 강해졌던 탓이다. 그래서 퇴사할 때까지 사람들과 얼마나 친하게 지냈더라. 확실한 건, 우리는 퇴사하고 나서야(당시에 같이 다니던 동료들은 모두 퇴사해 제 자리를 찾아갔다) 좀 더 속 깊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거다. 


두 회사를 모두 겪고 나서, 세 번째 회사에 처음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나의 태도'였다. 낯을 많이 가리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태도를 정해두지 않는다면 또다시 헤벌쭉하고 다니다가 혼자 기대하고 상처 입을 모습이 빤했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됐냐고? 반반이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모였지만, 서로의 기쁨과 슬픔은 함께 나눴으면 하는 사이.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1년째 시험하는 중이다. 


세 번째 인터뷰 비하인드를 이야기하는데 사설이 길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던 건, 세 번째 인터뷰이가 나의 동료이자 뉴닉의 브랜드 디자이너, 양수 님이기 때문이다. 양수님을 처음 안 건 인스타그램에서였다. 당시 나는 퍼블리에서 발행되는 손 현 에디터의 레터를 특히나 좋아했는데, 현 님의 결혼 이야기는 무척이나 낭만적이었고 이런 사람과 결혼하는 분은 누구일까 부러웠다. 이후 '남의 집' 프로젝트에 참여한 두 분의 모습을 가상의 세계에서 접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뉴닉에 들어온 첫날, 양수님을 실제로 뵀다! 내색은 안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내적 댄스가 충만했다. 저 팬이에요! 너무 뵙고 싶었다고요! 결국 그날이 가기 전에, 양수님에게 실토했다: 저... 제가 양수님을 인스타그램에서 봤거든요... 그런데 여기 이렇게 계시다니 제가 연예인을 보고 그런 느낌이네요 오홍홍. 


그 후로 '양수현(양수 님의 본명)'이라는 사람과 1년을 함께 일하면서 호기심은 더욱 커져갔다. 나는 울타리가 아주 명확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만 호기심을 가지는 편인데 양수 님이 나의 울타리 안에 빠르게 들어온 것이다. (알고 계셨을랑가...) 이 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디자이너 일을 하는 걸까,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결국 그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3호 인터뷰이로 모셔버린 것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고. 가끔 회사에서 양수 님이 해주는 동네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장 보러 자전거를 끌고 갔다가, 핫도그 집에 들렀는데 아이들이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길래 주책맞게 한 마디 했다는 이야기. 평범한 문장 같지만 신촌 등의 번화가에서 오래 살아온 나는 생소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양수 님이 현재 살고 있고, 주거단지가 가득한 목동이 궁금해진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쉽지는 않았다. 양수 님을 인터뷰이로 섭외했을 즈음은 둘 나에게 너무 바쁜 시기였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어달라고 선뜻 말씀드리기가 망설여졌다. 얼마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신지 눈앞에서 보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사려 깊은 양수 님이 늘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셔서("우리 인터뷰해야죠") 무사히 두 번의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양수 님은 준비도 못 했다고 하셨지만, 글쎄. 나는 그 날 것의 언어들이 더 좋았다. 바로바로 나오는 대답 아래에는 오랫동안 고민해온 생각들이 이미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질문을 던지지 않았는데도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이렇게 폭포수처럼 쏟아질 수 있다니. 정말 목적이 있는 '일'이었다면 그 대답을 중간에 잘 끊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했겠지만 <서울이십>은 애초에 내가 주변 사람들을 더 잘 알고 싶어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던 만큼 말하는 걸 그저 듣고만 있었다. 아니 사실 듣기만 해도 너무 재미있었다.


세 번째 인터뷰의 주제는 '집'이다. 아마 10명에게 물으면, 10명 모두 다른 대답을 할 듯 한 주제. 하지만 <서울이십>에서 나눈 이야기가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있다: 세 번째 인터뷰이는 자신이 앞으로 살 집과 공동체, 동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시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간을 직접 디렉팅 하는 분이 집과 동네를 바라보는 관점은 세밀하고 따뜻했다. 나는 양수 님의 집을 방문한 이후에 '목동'이라는 동네에 대한 편견을 벗어낼 수 있었다. 


겨우 3시간 남짓의 인터뷰로 나는 내 동료를 얼마나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까. 여전히 나는 그분의 일부만을 알 것이다. 하지만 동료로만 남기에는, 이제 내가 너무 아쉬운 관계가 되어버렸다. 



<서울이십>은 인터뷰와 사진, 그리고 아트웍이 어우러진 20페이지짜리 잡지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의 서울 이야기를 듣고 담아냅니다. 어느 한 개인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두가 읽고 고개를 끄덕일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담아낼 수 있도록 펀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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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수아

사진 장인주

디자인 천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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