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은 하고 싶은 이야기7
7화. 남편과 저녁
2시 40분.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고 짐을 정리한다.
은대구 두 봉지는 냉동실에 밀어 넣고, 캔 맥주는 냉장고에, 삶은 양과 은대구 한 봉지는 저녁에 먹을 수 있게 싱크대에 둔다.
오빠가 사준 빵들을 꺼내고 보니 살구색 카페 봉투가 튼튼하고 예뻐서 다음에 또 쓰려고 잘 접어 다용도실에 세워둔다.
초코 크로와상, 소시지 크로와상, 플레인 크로와상, 밀크푸딩이 두 개씩이다.
이걸 보면 다 먹겠다고 할 테니 초코 크로와상 두 개만 접시에 담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숨겼다.
띠. 띠. 띠. 띠. 띠. 띠.
둘째가 왔다.
하얀 도복에 빨간 띠를 맨 모습이 귀엽다.
첫째가 1학년일 때는 제법 의젓해 보였는데, 왜 둘째는 마냥 아기 같은지 모르겠다.
가방을 던져놓고 손을 씻는 아이 뒤에 서서
“오늘 삼촌이 맛있는 거 사줘서 갖고 왔지.”
둘째는 마음이 급해서 젖은 손을 도복에 문지르며 부엌으로 달려온다.
“어디? 어디? 삼촌 오늘 온대?”
나는 초코 크로와상 접시를 식탁에 놓고, 우유를 따른다.
“아니, 오지는 못하고 빵만 줬어. 저건 누나 빵이니까 놔두고.”
둘째는 도복을 부리나케 벗고 팬티 바람으로 식탁에 앉는다.
“엄마, 오늘은 엄마가 도복 개 줘.”
나는 도복 바지를 개며
“옷을 입고 먹어야지. 안 춥나?”
아이는 대답도 없이 먹기 바쁘다.
남편에게 연락한다.
‘저녁은 뭐 할까요?’
6살 나이차가 있는 우리 부부는 존대와 반말을 섞어 쓴다.
주고받는 메시지의 대부분은 저녁 메뉴 의논이다.
메뉴는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다.
밥을 먹기도 하지만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 맥주를 마시는 경우도 많다.
몸이 무겁다면 채소주스나 삶은 달걀만 먹기도 한다.
남편은 바쁜지 아직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묻는다.
‘아빠 집에서 양 가져왔는데 그거 굴소스에 볶을까요?’
답장이 왔다.
‘맥주 사 갈까? 삼겹살도 좀 사 갈게요.“
나는 함박웃음 이모티콘을 고른다.
‘맥주 몇 캔 갖고 왔으니까 큰 거 한 병만. 삼겹살은 자기 먹고 싶으면 사요. 나는 땅콩 사다주고.’
‘응 ㅅㅅ’
6시.
첫째가 왔다.
아이들이 티브이를 보는 동안 은대구를 조린다.
채 썬 양파를 냄비에 깔고 생선을 얹는다.
물 조금, 다진 마늘, 생강, 간장, 설탕을 넣고 바글바글 끓이면 짭짤하고 달큰해서 맛있다.
밥을 두 그릇 뜨고, 시어머니가 주신 열무김치를 던다.
첫째는 김치 맛을 제법 알아서 없으면 찾기도 한다.
콩자반도 있고, 아침에 먹었던 오이무침도 남았지만 애들이 반기는 반찬이 아니라 그만둔다.
밥 먹는 애들 앞에 앉아 생선살을 바른다.
생선살에 양파를 올리고 자작하게 잘 졸인 양념장을 끼얹어 주면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둘이서 큼지막한 은대구를 세 마리나 먹었다.
밥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첫째가 빵을 찾는다.
초코 크로와상 접시를 먼저 건네주고 밀크푸딩을 두 개 꺼내 작은 스푼을 꽂아 둔다.
둘째가 쌩 와서 푸딩 하나 가져가다가 다시 뒤돌아 와서 하나를 더 챙겨 누나에게 준다.
이제 나는 양을 볶는다.
양은 소의 첫 번째 위다.
이미 푹 삶긴 것이라 굴소스와 매운 고추, 산초를 넣고 한번 볶아주기만 하면 감칠맛이 좋다.
쫄깃하고 구수해서 나는 즐겨먹는데 남편은 소 하품 냄새가 난다며 그다지 즐기진 않는다.
6시 40분.
남편이 묵직한 종량제 봉투를 한 손에 들고 현관으로 들어선다.
1.6리터 맥주 하나, 볶음 땅콩 한 봉지, 오겹살 한 팩, 감자칩 한 봉지가 들어있다.
남편은 삼겹살보다 돼지껍데기가 그대로 붙어 있는 오겹살을 좋아한다.
달군 프라이팬에 오겹살을 세 줄 올려 두고, 양볶음을 접시에 담는다.
결혼기념일에 첫째가 사준 600cc 맥주컵도 꺼냈다.
흰 런닝에 반바지를 입은 짝이 식탁에 앉자마자 캔 맥주를 따른다.
두 잔 중에 거품 없는 쪽을 내 쪽에 놓는다.
나는 거품을 싫어한다.
슬쩍 식탁을 살펴보던 나는 오겹살을 한 번 뒤집고 자리에 앉는다.
남편이 잔을 권한다.
“아이고, 오늘도 수고 했어요. 한 잔 해요.”
나는 그냥 마시려다가 얼른 잔을 부딪힌다.
“자기도 수고 했어요. 많이 먹어요.”
첫째가 소파에 앉아서 우리를 건네다 보며
“살 뺀다더니 또 맥주 마셔?”
우리는 머쓱해졌다.
남편은 얼른 받아친다.
“나중에 아빠 치킨 시키면 안 줄 거다.”
첫째는 얼른 고쳐 앉더니,
“힝, 나도 먹고 싶어.”
나는 남편을 흘겨보며 얼른 말을 자른다.
“아니야, 닭 안 시켜. 걱정 마.”
남편은 큰 양파를 하나 집어먹고 일어나 프라이팬을 살펴보러 간다.
갈색으로 잘 익은 오겹살을 먹기 좋게 자르고 프라이팬을 기울여 끓는 돼지기름도 닦아내더니 한 손에 프라이팬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냄비 받침을 찾아 다시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장인어른 댁에 갔다왔나보네.”
“응, 생선 가져가라고 해서. 아, 사과도 가져가랬는데 까먹고 왔다.”
나는 한 쪽에 치워놨던 은대구 세 마리를 그릇에 옮긴다.
반질반질한 은대구를 보고 남편은 젓가락을 얼른 고쳐 잡는다.
“와, 맛있게 했네.”
나는 아이들에게 했듯 생선살을 발라 남편 입에 넣어준다.
“오빠 연락 와서 점심도 얻어먹고, 애들 빵도 받아 왔어요. 무슨 해물밥상집인데 괜찮더라. 다음에 가보자.”
두 번째 캔을 딴다.
“이야, 오늘 좋았네. 오빠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남편이 잔을 들어 다시 내 잔에 부딪힌다.
남편과는 소개팅에서 만났다.
사실 친구에게 들어온 자리였는데, 친구는 당시 남자친구가 있어 나에게 만남을 권했다.
이미 여러 번의 선자리가 가져봤던 30대의 남편은 내 나이를 듣고선 그냥 밥 한번 먹으러 나오는 사람이겠거니 했단다.
바로 그랬다.
상대가 삼십대니 결혼을 전제로 한 조금은 무거운 자리였을 텐데 나는 당시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것 같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멀리서 남편을 보자마자
‘어, 저런 사람이 왜 아직 결혼을 못 했지?’
속마음이 그랬다.
남편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선해 보이는 인상, 차분한 말투로 분위기를 주도했는데, 실제로 낯을 많이 가리는 남편이 그때 얼마나 노력했는지 연애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적극적이고 목청이 커 어디서나 눈에 띄는 괄괄한 성격의 아빠와 오빠를 보고 자라서일까?
기본적으로 성정이 순하고, 배려있고, 부드러운 남편이 참 좋았다.
아빠도 한번 만난 남편을 정말 마음에 들어 했고 그렇게 연애 1년 만에 우린 결혼을 했다.
처음엔 좋았다.
진짜 세상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함께 잠들고, 눈 뜨고, 밥 먹고, 여행가고.
‘연애의 완벽한 완성은 결혼이구나.’
당시 미혼인 친구들에게 결혼 예찬론자가 되어 어서어서 결혼하라고 등떠밀고 다녔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 탓인지 예민한 편이다. 신경질적인 때도 많다. 막내로 자라며 오빠, 언니에게 양보 받는 일이 많았고, 뭐든 들어주는 아빠 덕에 참을성도 없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6살 많은 오빠로서 나를 많이 배려해줬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낳으면서 나는 엄마로 버전 업 되었다.
임신 기간 동안 마음의 준비도 했었고, 호르몬 덕분인지 일단 몸이 바로 반응했다.
남편은 아빠로 버전을 바꾸는 데에 로딩이 좀 있었다.
엄마가 된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어떤 도움을 줘야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둘 만 살 때와는 달리 우리는 다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부부들처럼.
너무 하찮아서 기억할 수도 없는 자잘한 일들로 우리 부부도 싸웠다.
미워서 밥 먹는 입도 보기 싫고, 살이 닿는 것도 싫어 침대 끄트머리에서 웅크리고 잔적도 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낮 시간 문득 보고 싶어져
‘오늘은 이상하게 자꾸자꾸 보고 싶어요.’
이런 문자들을 보내고 있다.
내 감정은 스릴 만점 롤러코스터, 변덕의 대환장파티.
좋다고 갖은 애교를 다 떨다가도 어느 날인가는 또 획 돌아누워 버리는 나를 남편은 신기해한다.
물론 모든 아내들이 그렇진 않다.
내가 좀 그렇다.
아니 그랬다.
마흔이 넘고, 아이들도 어느정도 크니 감정을 쓰는 것도 힘이 든다.
점점 더, 점점 더 그렇게 될 거다.
세월 따라 자꾸만 무뎌져 정으로, 의리로 사는 날이 올 테지.
그래도.
젊은 날 가슴 두근거리며 만났던 오빠, 뭐든 다 주고 싶었던 여자로 오래오래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