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은 하고 싶은 이야기6

6화. 언니

by 연영


1시 20분.

오빠가 반쯤 남은 콜드브루에 생수를 섞으며 묻는다.


“연락 없제?”


나는 녹차 스무디를 빨대로 휘젓고 있다.


“뭐가?”


나는 오빠가 언니 얘기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알지만 하나마나 한 이야기고, 아는 것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없으면 다행이고. 인자 슬슬 가봐야겠네. 애들 먹을 빵이라도 몇 개 사가라. 아까 보니 크로와상 있드라.”


오빠는 어려서부터도 애들을 좋아했다.

귀여운 운동화나 옷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전화를 걸어 사이즈를 묻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밥에 디저트까지 얻어먹었는데 애들 먹을 빵까지 받아가기가 미안하다.


“아이다. 집에 먹을 거 많다. 있는 거 먹이면 된다.”


오빠는 내가 염치없어 하는 걸 안다.


“이왕 얻어먹는 김에 애들 간식까지 시원하게 얻어무라! 애들한테 삼촌이 사주드라 하고.”


쇼케이스에 크로와상을 종류별로 두 개씩, 밀크 푸딩도 두 개 담았다.

오빠를 다시 사무실에 내려주고 집으로 가는데 생각이 많다.


언니.


오빠와 연년생에 팔삭둥이로 태어난 언니는 외가에서 컸다.

8살에 입학하고부터는 쭉 함께 지냈지만 이상한 낯설음이 있었다.

함께 초, 중, 고를 보내는 동안에도 나는 오빠와 더 친했다.

어지르기 좋아하고 야무지지 못한 나는 늘 언니에게 잔소리를 들었으니 같이 놀아주는 오빠가 훨씬 좋았던 거다.

오빠도 연년생인 언니보다는 나를 더 챙겼고 삼남매 사이에서 언니는 소외받는 느낌이었을 거다.

언니는 서럽게 울었다.

“왜 나만 외가에서 키웠나.”

“나만 이 집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거 안다.”

“아빠는 나만 다르게 대한다.”

“할아버지는 오빠만 좋아하고, 아빠는 막내만 예뻐하니 나는 아무도 없다.”


외가에서 컸던 언니는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들에게 많이 의지했다.

아빠의 이혼으로 외가와 멀어졌고,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해야했다.

부모의 이혼은 자식에게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지만, 친가 중심으로 살았던 오빠와 나보다 외가 중심으로 살았던 언니가 받았을 상처가 더 컸을 게 분명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아빠까지도 언니의 혼란스러움을 깊게 공감하지 못했다.


할머니댁에서 자고 오는 날을 기억한다.

중학생이던 언니는 창문 밖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언니야, 왜 그러는데?”


언니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니, 좀 답답해서. 그냥 집에 가고 싶다.”


할머니댁에 자주 가보지 않았던 언니는 그곳이 불편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불편해 하는 언니가 외가에 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서운해 하셨다.

어린 시절 애착을 맺었던 대상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난 후 언니는 불쑥 폭발하는 감정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형제들만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서러움이 밀려왔을 거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원망이 뒤엉켜 언니는 억울함과 서글픔에 갇혔다.

무엇이 언니를 거기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언니에게 일정한 벽이 있었고, 그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속 깊은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언니는 정말 외로웠을 거다.


나도 아이가 둘 있지만 첫째, 둘째는 대하는 마음가짐부터가 좀 다르다.

그것을 차별, 편애라고 말한다면 억울한 부분이다.

아빠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랑 오빠와는 달리 차분하고 똑 부러졌던 언니.

이혼이라는 가정의 파탄 속에서 오빠는 사춘기였고 제일 어린 나는 매일 칭얼거렸다.

그런데 언니는 조용히 할 일을 잘 해나가고 오빠와 동생을 보살피기까지 하니 아빠는 대견해하면서도 돌봐야 할 대상에서 언니를 지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언니가 원하던 방향이 전혀 아니었다.

사실 언니는 울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외가 집 이모들에게 가서 다 이르고 싶었다.

나만 외가에서 살면 안 되냐고 떼쓰고 싶었다.

어른스러운 언니는 그게 안 된다는 걸 알고 칭찬 받는 아이가 되기로 한 거였는데 아빠는 언니가 보낸 사인을 잘못 읽었다.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에 가고 싶어졌고, 아빠는 어렵게 잡은 직장을 버리는 것에 반대 했다.

언니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갔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간절했을까?

언니는 많은 거짓말들을 했고 아빠는 곧 빌린 돈을 갚아달라는 언니의 지인들과 대부업체 직원들에게 시달리기 시작했다.

언니가 다닌다던 대학에 전화를 해보던 날 아빠는 크게 실망했다.

큰 충격이었다.

거짓말에 진절머리 난 아빠는 언니를 놓아버렸다.


몇 년 후, 내가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

언니는 가정을 이뤘고 지난 시간들을 후회했다.

지금은 안정되게 살고 있다고 했으며 아빠에 대한 감정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 보였다.

나도, 오빠도 지난 이야기는 묻어두고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참 잘 지냈다.


아빠도 언니와 잘 지내려 애썼다.

언니가 우리 집에 오면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들을 준비해 찾아오고, 언니 취향도 아닌 귀여운 잠옷들을 여러 벌 놓고 가기도 했다.

언니는 그럴 때마다 울었다.


“나도 아빠 마음 안다. 다 아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서럽던지......”


언니는 지글지글 끓는 돼지갈비 앞에서 노오란 원피스 잠옷을 입고 다시 13살이 되어 그 때 받았어야 할 위로를 받았다.


언니는 자신이 훌쩍 서울에 가버리고 난 후, 내가 어떻게 지냈나 미안해했고 친정엄마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나를 많이 걱정했다.

동생인 나를 엄마처럼 챙기며 멀리서도 많은 소포들을 보내고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애썼다.


지금은 아무도 언니와 연락하지 않는다.

언니는 다시 많은 거짓말들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언니는 아빠에게 큰 금전적 손해를 안겼다.

일에 차질이 생겼다는 말도, 미안하다며 울먹이는 언니도 모두 신기루였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결과적으로 언니가 잘 살기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화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마지막 연락을 하는 순간까지 나는 언니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내가 힘들 때 따뜻하게 챙겨 준 언니.

속상한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전화해서 다 털고 위로 받고 싶었던 언니가 다시 엄마처럼 떠나갔다.


나는 엄마에게 그랬듯이 못 되게 눈을 흘기고 손가락질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도끼눈을 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지애일까?

언니는 불쌍했다.

엄마는 불쌍하지 않았지만, 언니는 불쌍했다.

다시 언니와 예전처럼 지내고 싶지는 않다.

그럴 수도 없고.

그저 언니가 이런저런 일들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 편안하게,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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